조흥은행을 필두로 경영정상화계획 조건부 승인을 받은 7개은행의 행장을 비롯한 임원진의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시작됐다. 조흥은행은 지난 18일 긴급확대이사회를 열고 11명의 임원진중 장철훈(張喆薰) 행장등 6명의 임원이 이미 옷을 벗었다. 금융감독위원회의 요구에 따라 상업 한일 외환등 대형시중은행을 포함한 이들 조건부승인 은행들은 내달 20일 일제히 주주총회를 열고 은행장을 비롯한 현 임원진의 대거 퇴진과 과감한 외부인사 영입등 대폭적인 물갈이 임원교체를 한다.은행을 오늘의 부실덩어리로 만든데는 경영을 맡아온 전현직 임원들의 책임이 크고 이들에 대한 응분의 문책은 당연하다. 부실경영의 경위를 밝히고 이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당장 엄청난 피해를 입은 주주들에 대해서 뿐만아니라 금융구조조정의 비용부담을 엉뚱하게 떠안게 된 국민에 대해서도 당연한 도리이다. 뿐만아니라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은행 임원진의 물갈이가 없이는 새롭게 태어나야 할 은행의 구조쇄신작업도 어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과거의 부실대출까지 소급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것도 무리한 얘기가 아니다.
그러나 금융부실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외압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은행경영구조와 제도에 있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관치(官治)금융이 불식되지 않고 은행경영에 진정한 자율과 책임이 뒷받침되지 않은채 사람만 바꾼다고 부실대출이 근절될 수는 없다. 은행간부가 임원이 되고 자리를 유지하려면 권력층과 유착되지 않고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부적격업체에 대한 무리한 대출 뒤에는 한보사건의 예에서 보듯 항상 권력층의 청탁과 압력이 있었다. 커미션을 받고 대출했다고 수갑을 찬 은행장의 모습 뒤에도 으레 권력의 압력이 작용했음이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금융이 환골탈태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려면 무엇보다 은행에 자율과 책임경영체제를 확고히 하는 일부터 선행돼야 한다. 외환위기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다급한 은행구조조정과정에서 관권의 개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은행이 외압을 배척하고 자율과 책임아래 금융의 본래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으로 그쳐야 한다.
물갈이를 구실로 구체적인 임원인사까지 정부가 미주알 고주알 개입하면 이렇게 선임된 임원이 누구 눈치를 보겠는가. 물러나는 임원도, 새로 영입되는 임원도 마구잡이식이 아니라 분명하고 객관적인 기준과 원칙아래 선별될 수 있어야 관치의 폐습을 벗어나고 구조개혁의 명분도 확립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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