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음성·탈루소득추정액 100조원 과세특례제도와 복잡한 세금체계때문에 가짜 세금계산서가 곳곳에서 횡행하고 법대로 내면 ‘팔불출’ 취급을 받는 등 탈세는 우리사회 ‘문화’가 되어버렸다한국은 「탈세천국」이다. 국민의 의무인 세금을 꼬박꼬박 다 내는게 결코 자랑거리가 아니다. 탈세를 못하면 오히려 「팔불출」취급을 받는다. 『다들 세금 떼먹는데 나만 정직하면 손해』라는 생각이 팽배해있다.
탈세가 전혀 범죄로 인식되지 않을 정도로 가치관의 몰락은 심각하다. 가짜 영수증, 가공 세금계산서, 이중장부 등 교묘한 탈세 노하우가 판을 친다. 세무공무원과 납세자(자영업자 등)는 뇌물로 세금을 흥정하는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있다.
이달초 국세청이 발표한 음성·불로소득자 명단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러나 국민들 가운데는 『재수없는 몇몇 사람들이 시범케이스로 걸렸을 것』이라며 동정어린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않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작년 한해동안 세금을 내지않은 음성·탈루소득은 무려 1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이는 올해 정부예산(74조원)의 1.35배, 국민총생산의 23%에 해당되는 액수다. 올들어 정부는 세수 메꾸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경제불황의 여파로 탈세는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선진외국이라고 탈세가 없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서 거리낌없이 탈세가 이뤄지는 것은 그만큼 세금이 빠져나갈 「구멍」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근거과세가 이뤄지지 않는 것. 사업자들은 장부기입을 기피하고 물건을 사고팔때 세금계산서나 영수증을 주고받지 않으며 금융실명제가 정착되지 않은 탓에 돈이 근거도 없이 왔다갔다한다.
고려대 이만우 교수(경영학)는 『탈세방지는 영수증제도가 관건』이라며 『껌한통을 사도 항상 영수증을 주고받는 외국처럼 과세근거를 명확히하는게 우선 과제』라고 지적했다.
부가가치세 과세특례제도는 우리나라 세제의 대표적인 허점이다. 부가세는 매출액의 10%를 내야하지만 연간 매출액 4,800만원미만인 사업자는 과세특례자로 분류, 2%만 내면 된다. 따라서 연매출이 4,800만원이상인 사업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탈세를 저질러 과세특례자로 남으려 한다.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사업자에게 본업보다는 「탈세수업」이 훨씬 우선과제이다.
또 부가세가 있는 나라치고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종사자에게 부가세를 물리지 않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그런데도 최근 국회는 전문직 종사자에게 부가세를 부과하면 결국 국민부담으로 전가된다는 편파적 논리를 내세워 세금부과를 하지 않기로 했다. 평범한 시민들이 탈세에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납세에 강한 저항을 하는 것도 이러한 불평등과 무관하지 않다.
이밖에도 복잡한 세금체계, 짧은 조세시효 등도 세금 누수의 요인이 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조세제도가 너무 복잡하고 허점이 많다며 이를 정비할 것을 정책권고사항으로 제시했다.
늘 제도를 탓하지만 세금에 대한 국민의식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서양에는 「모든 사람에게 가장 확실하게 찾아오는 것은 죽음과 세금」이라는 속담이 있다. 세금은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탈세자 처벌이 엄격한 외국에서조차 현금장사 등을 통해 교묘히 법망을 뚫고 세금을 떼먹기로 유명하다. 작년에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한인상가에서 탈세자가 무더기로 적발돼 교포상권이 엄청난 타격을 입기도 했다.
숭실대 이성섭 교수(무역학)는 『탈세가 만성화된 체제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하나의 국민성, 문화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양대 나성린 교수(경제학)는 『국민들이 정부에 서비스만 요구할뿐 부담은 지려하지 않는 것은 큰 문제』라며 『국가에서 서비스를 받으려면 돈(세금)을 내야 한다는 조세 의식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금의 불공평성도 탈세를 당연시하는 도덕불감증의 원인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근로소득자와 자영업자간의 소득세 부담격차는 평균적으로 4배, 고소득층에 있어서는 10배에 이른다고 한다. 자신만 억울하게도 세금을 더 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납세자가 틈만 나면 탈세기회를 엿보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여기에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정책추진과 집행으로 국민의 혈세를 흥청망청 낭비해버리는 정부도 탈세문화의 확산에 책임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도무지 근절되지 않는 세무공무원들의 비리와 탈세는 맞물려 돌아간다. 서울에서 건물임대업을 하는 김모씨. 소득을 제대로 신고한뒤 세무서로부터 어이없는 전화를 받았다. 『그대로 신고하면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우리도 (세금 적게 낸) 다른 사람들에게 세금을 더 추징하려면 귀찮으니 다른 사람 하는대로 꾸며와요』 세금을 제대로 내려다가 칭찬은 커녕 핀잔만 들은 경우다. 세무 공무원과 납세자가 손만 잡으면 양자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는 체제에서 세금이 펑펑 새고있다.
신정부는 출범직후부터 세제개혁, 탈세와의 전쟁에 나섰으나 국민들은 『또 시작이다』라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나성린 교수는 『세제개혁·탈세척결은 어느 정권이나 강조했던 얘기』라며 『실효성은 통치권자와 세정책임자의 정책의지에 달려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립대 최명근 교수(세무학)는 『탈세를 하면 탄로나지않을 수 없는 투명한 거래제도, 탈세자가 잡히면 선별하지 않고 모두 처벌하는 엄격한 사후관리가 급선무』라고 말했다.<남대희 기자>남대희>
◎엄포성 단속보다 성실납세가 이익되게/현진권 한국조세연구원연구위원
우리나라에서 탈세가 선진국에 비해 심한 이유는 우리나라 국민이 상대적으로 도덕심이 결여되어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각 나라의 제도 및 환경수준이 탈세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다.
탈세는 정부와 납세자들간의 게임의 결과이다. 정부는 세무조사와 벌금이라는 정책수단을 사용하여 납세자들에게 성실납세를 유도한다. 반면 납세자는 탈세하는 것이 이윤이 높을때는 누구나 언제든지 탈세를 하게된다.
그러므로 납세자의 성실납세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탈세하는 것이 성실납세하는 것보다 불이익이 가도록 정책수단을 강구하면 된다. 세무조사는 객관적이고 투명해야 하며, 벌금에 해당하는 10% 가산세는 올릴 필요가 있다.
탈세 방지는 제도적으로 접근하여, 탈세를 유도하는 환경을 변화시켜야 한다. 일반적으로 탈세에 대한 주기적인 사회적 관심에 맞추어 행정력을 강화하는데, 이는 바른 정책방향이 아니다. 세무행정력을 통한 접근은 장기적인 효과를 가질 수 없고, 납세자들로부터 정책에 대한 공감을 유도할 수 없다.
우선 탈세를 조장하는 제도로 부가가치세의 과세특례제도가 있다. 이 제도는 연간 매출액 4,800만원 미만의 소규모 사업자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사회가 지불하는 사회비용은 너무도 크다. 탈세가 일반화하고, 제도보다 관행이 우선하는 사회로 만들어 버린것이다. 사업소득자와 근로소득자간의 세부담에 있어서 불공평한 문제도 여기에서 파생한 것이다. 소규모 사업자를 위한다는 정책목표와 투명한 납세환경 확립이라는 정책목표 사이에서 과감한 선택이 필요한 때이다. 부가가치세는 일반과세로 일원화되어야 한다.
탈세를 방지하는 정책방향이란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만드는 것이다. 금융실명제의 존폐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금융실명제는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가져야 할 기반이므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이를 바탕으로 모든 거래가 제도권에서 파악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정책수단을 동원하여 우리의 관행을 조금씩 바꾸면 되는 것이다. 수표와 신용카드를 사용하도록 하게 하는 정책이 그것이다.
◎국내의 탈세백태/유령회사명의 세금계산서 사고팔기도
지난 5월 개업의사 K씨(34)가 관할 세무서에 신고한 지난해 한해동안 소득액은 1억3,000여만원. 소득자료가 포착되는 보험환자 진료비용을 기준으로 일정비율만큼 일반환자 진료비용을 보태 세무당국에 신고한 액수다.
그러나 K씨의 지난해 벌어들인 실제 소득액은 이보다 5,000만원이 많은 약 1억8,000만원. 1억3,000만원을 신고해 500여만원의 소득세를 냈으니 5,000만원에 대한 소득세 탈세를 한 셈이 된다. 일반환자의 진료비용이 대부분 현금이므로 세무공무원이 매일 병원 원무과에 출근, 환자수를 계산하지 않는 이상 회계장부가 얼마나 정확한지를 확인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K씨는 별 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탈세는 근로소득세가 원천징수되는 일반봉급자를 제외한 자영업자, 기업인, 연예인, 의사, 변호사들 사이에는 보편적 행위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설립 8년째인 디자인회사 사장 S씨는 세금부담을 피하기 위해 외형 10억원의 회사를 5억원 회사 둘로 나눴다. 그는 『만약 세무조사를 받게되면 한 회사를 고의부도 내 폐업한뒤 나머지 회사만 운영하다 적당한 시기에 개업하면 된다』고 말했다. 매출이 느는 것 보다 훨씬 큰 폭으로 세금이 늘기 때문에 탈세안 하고는 기업을 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논리이다.
17개 국세중 탈세범위가 큰 세목은 부가가치세와 소득세, 법인세, 상속세가 꼽힌다. 과세자료가 불완전하기 때문에 부가가치세와 소득세는 탈세를 막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서울 미도파백화점이 상품판매에 따른 부가가치세 51억원을 장부조작을 통해 미지급 비용계정으로 조작하고 가수 신승훈, 김건모씨가 금전등록기영수증을 수집해 11억원의 가공경비로 만들어 소득세를 탈세한 것도 회계장부나 영수증이라는 과세자료의 부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일반자영업자나 기업의 경우 원청업체가 하청업체에 원자재매입 세금계산서를 실제금액보다 부풀리거나 아예 백지세금계산서를 받아 지출을 늘린다. 순이익에 대해 내는 법인세를 줄이기 위한 목적이다. 식당등의 간이세금계산서는 손님 요구에 따라 한꺼번에 수십장 발급될 정도로 유명무실한 과세자료다. 기업간 거래에서 통용되는 세금계산서를 파는 자료상도 있다.<정진황 기자>정진황>
◎외국에서는/현금거래 드물어 탈루요인 원천봉쇄
탈옥영화로 유명한 「쇼생크 탈출」은 아내살인혐의로 장기징역형을 받은 은행원출신의 주인공이 교도소장과 간수의 탈세와 절세를 도와주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에서도 세금과 탈세는 숙명적 동반관계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탈세를 막는 금융환경과 엄격한 법, 그리고 세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차이로 탈세의 빈도나 정도가 훨씬 덜 하다는 점이 우리나라와 다르다.
미국등 구미선진국의 경우 금융실명제에 따라 자금흐름이 투명하고 신용카드가 일상화해 있어 일반 국민이나 기업이 탈세를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물론 미국의 일반소매점등에서 현금으로 지불할 경우 할인을 해주는 예도 있지만 대부분의 미국인은 주로 신용카드를 사용하기 때문에 현금거래에 따른 탈루세액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미국국세청은 탈세가 잦았던 집단을 분석, 유형이 비슷한 납세자를 골라 세무조사를 실시하는 과학적인 기법을 사용한다. 이같은 자료를 토대로 미국국세청은 불성실 신고혐의가 있는 납세자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하는데 일단 세무조사에 들어가면 무죄로 인정할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한 세금추징을 피할 수 없다. 미국인들이 각종 영수증과 봉급명세서, 금융거래자료를 철저하게 모아두는 것도 그 때문이다. 더욱이 상속세를 제외하면 탈세를 해도 5년만 지나면 처벌을 받지않는 국내 세법과 달리 미국에서는 언제라도 탈세가 적발될 경우 처벌을 받아야 한다. 물론 뇌물을 받고 세금을 감면해주는 비리 세무공무원은 찾기 어렵다.
독일만 하더라도 세계적 테니스 스타인 슈테피 그라프의 탈세혐의를 포착하고 연방재무부가 가택수색까지 벌일 정도이다. 조세범은 누구든지간에 당국의 엄정한 조사와 심판을 피할 수 없다. 과세자료의 완벽한 포착과 엄격한 처벌, 과학적 조사라는 조세환경이 마련돼 있어 선진국 국민들은 웬만한 용기없이는 탈세를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에서도 중견기업 사장이 국세청으로부터 탈세혐의를 받자마자 은행예금인출이 중단되는 등의 불이익으로 흑자 운영되던 기업이 쓰러졌을 정도로 조세범에 대한 처벌과 사회적 인식이 엄격하다. 『안내면 최선이고 줄이면 차선』이라는 우리의 세금인식과 풍토와는 너무나 다르다.<정진황 기자>정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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