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 선수는 영웅이다.』김대중 대통령의 온 국민을 대표한 찬사다.
『박세리는 20세기의 마지막 우상이다.』
AFP통신의 세계적인 평가다.
이 땅에 새로운 영웅이 태어나고 새로운 우상이 등장했다.
영웅이란 무엇인가.
19세기 영국의 사상가이자 역사가인 토머스 칼라일은 『세계사는 위인들의 전기(傳記)일뿐』이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인류가 이룩한 역사는 결국 영웅들의 역사라는 말이다. 칼라일이 누구던가. 셰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꾸지 않겠다고 장언(壯言)한 장본인이다.
『만일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 영국인에게 인도와 셰익스피어 둘중 어느 것을 포기하겠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인도야 있든 없든 상관없으나 셰익스피어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이 말은 그의 영웅사관(史觀)을 집약한 명저 「영웅숭배론」에 나온다.
칼라일은 셰익스피어도 영웅의 범주에 넣는다. 그에 의하면 영웅이란 일반대중이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모범과 전형이 되는 인물이요 그것을 창조하는 인물이다.
영웅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바뀐다.
신화(神話)시대에는 제신(諸神)이 영웅이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아킬레스나 오디세우스 같은 트로이전쟁의 영웅은 신으로 간주되었다.
신들이 올림포스산에서 하산한 다음에는 신의 대리인들이 영웅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웅이었고 모하메드가 영웅이었다.
종교가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대에는 성직자가 영웅이다. 마르틴 루터같은 종교개혁자도 영웅이었다.
근세에 들면서는 제왕이나 정치가나 장군등에 영웅이 있다. 청교도혁명의 크롬웰이나 나폴레옹등이 여기 포함된다.
칼라일이 셰익스피어나 단테 같은 시인을 새로운 형태의 영웅으로 꼽은 것은 이채롭다. 영웅개념의 근대화다. 루소같은 문인도 영웅의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19세기의 베스트셀러였던 「영웅숭배론」에서는 영웅의 역사가 여기서 끝난다.
역사에 있어서 영웅의 역할을 강조한 칼라일의 영웅사관은 20세기들어 히틀러같은 독재자의 출현을 엄호했다고 일부로부터 비판받기도 한다. 영웅만이 역사를 창조한다는 그의 역사관은 반민주주의적이라는 것이다. 이와함께 20세기에 나타난 칼라일이후의 새로운 영웅들은 민주주의적 영웅들이다. 스타라는 이름의 평민적 영웅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웅은 시대의 소산일뿐 아니라 그 시대를 상징한다. 영웅의 모습을 보면 그 시대를 알 수 있다. 지금은 세계적인 배우나 가수나 운동선수같은 스타들이 영웅인 시대다. 영웅숭배의 신화(神話)나 우상(偶像)을 스타들에게서 찾는다.
이번 주초에 끝난 월드컵대회에서 프랑스가 우승한 뒤 파리의 샹젤리제 대로를 가득 메운 100만 인파의 행렬은 영웅의 교체의식이었다. 이 장관은 2차대전 말기 드골 장군이 개선문을 통해 해방된 파리에 입성하던 날의 환영인파를 상기시킨다. 그때 드골은 프랑스의 영웅이었다. 이제 지네딘 지단 선수의 이름이 전광판으로 새겨진 개선문 앞을 프랑스 축구팀이 개선행진한다. 한 선수뿐 아니라 집단영웅들의 등장이다. 승리의 환호는 새로운 영웅찬가였다.
세계역사의 어느 시대에나 영웅은 그 시대의 구원자가 되어왔다. 역사의 통로에 바리케이드가 쳐질 때 영웅이 나타난다. 영웅의 모습이 달라진 지금도 그 돌파구로서의 역할은 마찬가지다. 세계적인 스타의 등장은 어떤 정치지도자의 힘보다 더 큰 힘으로 국민의 흩어진 마음을 통합시킨다. 국민의 어지러운 가슴을 위안하고 안무(按撫)한다. 박세리가 그래서 영웅이다.
칼라일은 그의 시대에 벌써 영웅숭배가 사라져가는 경향이 있음을 개탄했다. 위인의 존재를 부인하는 시대, 위인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시대를 경고하고 영웅숭배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그리고 그는 영웅들로 가득한 세상을 꿈꾸면서 『영웅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영웅에게 적합한 세상이 있어야 한다』고 외쳤다.
20세기 들어서의 1918년 당시 영국의 수상이던 로이드 조지도 어느 연설에서 비슷한 말을 했다. 『우리의 과업은 무엇인가. 영웅이 살기에 알맞은 영국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 우리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세계급 스타들을 양성해 「영웅들로 가득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들 영웅이 성장하기에 알맞은 나라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논설고문>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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