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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 오부치앞 가지야마 ‘돌출’/日 자민 총재선출 이상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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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력’ 오부치앞 가지야마 ‘돌출’/日 자민 총재선출 이상기류

입력
1998.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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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소장派 지지업고 “대항馬 나서겠다” 선언/조직對 바람 맞대결 양상【도쿄=황영식 특파원】 차기 총리를 건 24일의 일본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외무장관의 선출이 유력한 가운데 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 전 관방장관이 16일 출마 의사를 밝혀 중반 파란이 일고 있다.

15일 오부치파 간부회의가 「단일 후보 옹립」을 결정한 후 출마 포기를 시사했던 가지야마 전장관은 이날 파벌 일각의 반발과 당내 소장파의 권유에 힘입어 『오부치 장관 이외에 후보가 없다면 대항마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 발언과 관련, 미야자와(宮澤)파 외곽의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외무장관이 『출마하지 않고 가지야마씨를 밀겠다』고 선언, 당내 반지도부파와 소장파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또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후생성 장관이 관망 자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그의 출마를 종용해 온 미쓰즈카(三塚)파 소장파 의원들은 『고이즈미 장관이 나서지 않으면 가지야마를 지지하겠다』고 밝히고 나섰다.특히 이날 오후의 중·참의원총회에서 『좀 더 시간을 가지고 당내외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라 당초 21일로 예정된 총재선 일정이 24일로 연기되는 등 자민당 저류에 이상 기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자민당 총재선은 오부치의 「조직」과 가지야마의 「바람」이 맞대결하는 양상으로 급변했다. 현재의 당내 세력 분포로 보아 오부치가 크게 유리하다. 그러나 파벌 정치를 비판하는 여론을 업은 「가지야마 바람」도 결코 만만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대 파벌 오부치파의 회장으로 파벌단일 후보로 결정된 오부치는 현재 제2 파벌 미쓰즈카(三塚)파 지도부의 지지도 얻었다.

한편 오부치는 17일 출마 선언과 함께 「영구감세 등 적극적인 경기부양책 실시」를 밝혀 경제에 어둡다는 시장의 우려를 씻을 계획이다.

◎가지야마출마 영향 엔·주가 상승

○…16일 도쿄(東京) 외환시장에서 엔시세는 오후들어 가지야마 전장관이 자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사자 주문이 쇄도, 한때 전날 보다 1.42엔이 높은 달러당 139.23엔에 거래됐다. 139엔대는 9일이후 처음이다.

주식시장에서도 오전중 하락세였던 평균주가가 반등, 전날에 비해 142엔이나 올라가는 등 「가지야마 효과」가 시장을 흔들었다.

◎오부치­다케시타派 嫡子… 탄탄대로 달려온 12選/가지야마­불같은 성격·행동… 싸움통해 성장한 9選

오부치(61) 장관과 가지야마(72) 전 장관은 오랫동안 정치 운명을 같이 해 왔지만 성격과 경력이 크게 다르다. 오부치가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의 「적자(嫡子)」로 순탄하게 성장했다면 가지야마는 늘「외로운 늑대」로 싸움을 통해 커왔다.

두 사람은 전총리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파의 「7총사」에서 시작해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전쟁」, 다나카에 대한 다케시타 전 총리의 반란,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몰아내기에 이르기까지 늘 동지였다. 그러나 오부치파 출범 이후, 특히 96년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정권 발족 후 가지야마는 타고난 불같은 성격과 행동력으로 당지도부를 흔들었다. 63년 와세다(早稻田)대 대학원 재학 시절 군마(群馬) 3구에서 아버지 고헤이(光平)의 뒤를 이어 26세에 첫 당선된 이래 내리 12선을 한 오부치는 유순한 관리자형이다. 반면 11세의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형님 손에서 자란 가지야마는 니혼(日本)대 공학부 졸업후 6년간 대리석 회사에 근무했고 이바라키(茨城) 현의원을 거쳐 69년 40세의 나이로 중의원에 처음 진출했다. 낙선의 고배도 맛본 9선 의원이다.

가지야마는 내년 9월까지의 잔여 임기만 채우는 이번 선거에서 오부치가 양보하고 그 이후의 「온전한 총재」를 택하기를 기대했다. 전후 최악의 불경기로 참의원 선거에 참패한 마당이어서 「경제에 어두운」 오부치보다는 적극적인 경기부양 발언을 거듭해 온 자신을 파벌이 밀어 주리라는 은근한 기대였다. 국민 여론도 「가지야마 대망론」이 대세였다. 그러나 지도부의 결정은 달랐고 이에 파벌·당내 반발이 이는 틈을 타 마침내 그는 오부치와 다른 길을 결심했다고 볼 수 있다.<도쿄=황영식 특파원>

◎오부치派/보수元祖 요시다派서 뻗어나온 최대 파벌

일본 자민당의 차기총재는 오부치(小淵) 파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아졌다.

오부치파는 일본 전후 보수정치의 원로인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가 창립한 「헤이세이(平成)정치연구회」에서 비롯된다. 이 연구회는 요시다파로 불렸으며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전 총리의 이케다파와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전 총리의 사토파로 갈라졌다.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가 사토파의 맥을 이은 다나카파는 85년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의 「반란」으로 주인을 바꿔 다케시타파로 다시 태어났다. 오부치파는 바로 다케시타파의 후신이다. 63년 군마(群馬)3구에서 첫 당선된 오부치는 85년 다케시타를 업고 병으로 쓰러진 다나카에 반기를 들어 다케시타파를 설립했다. 오부치는 파벌 사무총장을 지내다 92년 10월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현 자유당 당수)의 도전을 뿌리치고 파벌을 계승해 오늘에 이르렀다.<도쿄=황영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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