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헌정사 권력싸움 얼룩/憲裁도 정치사안 소극적/‘헌법의 지배’ 아직 요원한가몇해 전 한글날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라디오 음악프로그램의 진행자가 느닷없이 이런 말을 했다. 「한글날은 매우 뜻깊은 날인데 왜 공휴일에서 뺏는지 모르겠다. 굳이 공휴일 수를 줄이려면 제헌절같은 것을 빼면 좋지않는가. 권력잡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뜯어고쳐온 것이 헌법 아닌가…」헌법에 대해 일반시민이 갖는 감정도 이 진행자의 말과 별로 다르지않을지 모른다. 사실 지금까지 아홉차례의 개헌과정은 그 대부분 권력연장을 위한 싸움의 소산이지 않았는가.
비록 오욕의 역사라고 하지만 지난 반세기의 헌정사에서 나름대로 변화의 매듭을 찾아볼 수 있는 만큼, 시기구분을 해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이다. 헌법규범의 내용 또는 헌법규범과 헌법현실의 괴리 여부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50년 헌정사를 세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번째 시기는 제헌부터 제3공화국까지의 시기다. 이 시기의 헌법은 적어도 규범 자체로서는 입헌주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이지만, 그러나 규범과 현실 사이에 현저한 괴리가 있었다. 현실이 규범을 따라가지 못했던 것이다.(4·19후의 제2공화국은 학생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우리 헌정사의 짤막한 에피소드였다고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 다음 시기는 유신헌법부터 제5공화국까지다. 이 때의 헌법은 규범 자체가 이미 입헌주의 원리를 유린한 권위주의 헌법이었다.
마지막 세번째시기는 87년 6월 시민항쟁으로 성립한 제6공화국부터 지금에 이르는 시기다. 헌법규범이 입헌주의 원리에 부합할 뿐 아니라, 현실이 규범에 접근해가기 시작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 우리는 헌법이란 그저 정치적 선언 이상은 못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제 헌법도 하나의 법이고 우리 생활과 직접 관련이 있는 생활규범이라는 생각이 꽤 널리 퍼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의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헌법재판소의 등장이다.
올해로 10년째를 맞는 헌법재판소에는 근래 해마다 500여건의 사건이 제소된다. 그 대부분은 국민 개개인이 인권침해를 이유로 직접 헌법재판소에 구제를 요청하는 헌법소원절차에 의거한 것이다. 헌법소원제도는 국민의 헌법의식, 인권의식을 높이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서는 늘 위축된 자세를 보여왔다. 「한정합헌」이라는 변형결정을 남용해왔는가 하면, 소송절차적인 이유로 판단을 회피하는 등 소극적 자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국무총리서리임명에 관한 최근의 각하결정도 그 단적인 예다. 아직 그 위상을 확립했다고 보기 힘든 헌법재판소의 이런 소극적 태도를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런 자세가 지속된다면, 자칫 헌법재판소가 국가최고기관의 하나가 아니라 정치적 이급기관으로 격하될지 모른다.
21세기를 눈 앞에 두고 우리 헌법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해볼 수 있을까. 당장 예상되는 것은 또 한차례의 권력구조논쟁이다. 필요하다면 정부형태를 재론하는 것은 마다할 일이 아니다. 의원내각제 개헌론에 대한 찬반을 떠나 지금의 대통령제가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러나 또다시 집권자의 정략적 발상에서 개헌론이 전개된다는 자체가 낭패스럽다. 제헌 당시부터 말썽이었던 당파적 권력구조논쟁은 우리 헌법의 숙명인가.
새 정부의 개혁노력에도 불구하고 「헌법의 지배」라는 면에서는 아무 진전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집권자가 헌법을 지키려는 자세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에서 법의 지배는 요원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