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16강에도 끼어들지 못해 프랑스 월드컵에 대한 국민적 열기도 일단 식어진 것이 분명한데 다른 나라들의 경기를 가끔 지켜보면 이것은 경기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선수들은 일정한 룰을 지켜가며 공을 차야하기 때문에, 상대편 선수에게 욕설을 퍼붓거나 눈을 흘기는 정도가 고작인데 응원석의 열성분자들의 가슴에는 불길이 치솟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따지고 보면 어느 팀이 이기건 관전자의 입장에서는 잃을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다. 물론 도박도 한 몫 끼어들어 있다니까 돈 때문에 그렇게 열을 올린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극소수의 일이고 대부분의 구경꾼들은 자기 나라의 선수가 꼭 이겨야 한다는 일종의 미신에 사로잡혀 있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유럽의 나라들은 그만그만 하다. 조금만 가면 국경선이고 나라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이 하나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유럽공동체가 일치단결하여 미국이나 아시아의 경제권에 도전할만도 한데 아직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까닭이 민족이라는 단위가 크게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지만 독일과 프랑스는 사이가 나쁘고 영국과 프랑스는 계속 미워하는 사이다.
마르크스는 1848년 「공산당선언」을 발표하면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고 호소했지만 만국의 노동자가 단결해본 적이 없다. 미국의 노조는 가장 반공이념에 투철하였고 스탈린은 독일군이 침공해 들어왔을 때 『슬라브족이여 단결하라』고 부르짖었다. 주의나 사상도, 이념이나 철학도 민족과 민족 사이의 담을 헐지는 못하였다.
월드컵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뭐니뭐니해도 아직은 민족이 단위이다. 우리를 하나로 묶는 것은 여전히 핏줄이 아닌가. 혈통이 하나이고 언어가 하나이고 풍습이 하나인 우리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러시아와 맞서고 일본과 맞서고 중국과 맞서서 싸우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를 대신해 싸워줄 것인가. 노사문제도, 경제위기도 민족의 이름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월드컵 축구경기를 지켜보면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을 되새기게 된다. 우리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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