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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아직 귀국할때 아니다/전상돈 체육부장직대(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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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아직 귀국할때 아니다/전상돈 체육부장직대(광화문)

입력
1998.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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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이야기하자. 아쉽지만 올해 박세리(21)는 한국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US여자오픈과 제이미 파 크로거대회에서 보여준 호쾌한 장타, 정교한 아이언샷, 홀컵을 파고드는 정확한 퍼트는 경이로웠다. 지난 수년간 그의 경기를 직접 관전해 왔던 터라 그의 잠재력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빨리 세계정상에 오를 줄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US여자 오픈 연장전 18번홀에서의 물속 투혼. 제이미 파 크로거대회에서의 각종 신기록. 처음에는 타이거 우즈와 비교했던 세계언론도 이제는 「타이거는 가고 세리가 왔다」고 할 정도다. 그의 신기록은 정리하기 조차 힘들 정도로 많다. 세계언론의 극찬을 받을만한 기록이고 쾌거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부터다. 사상 최연소로 메이저대회 2연속 우승을 차지했더니 온나라가 이내 들썩거렸다. 정부는 훈장 수여를 결정했고 청와대 만찬도 계획중이다. 그를 위한 대대적인 국민환영대회도 갖겠다고 한다. 「박세리 골프학교」에 이어 「세리 박 주식회사」소식도 들린다.

박세리는 지난해처럼 LPGA투어 중간에 짬을 내 8월초 귀국, 한두차례 국내대회에 참가할 계획이다. 골프의 종주국에서 열릴 전영여자오픈(8월13∼16일)에는 불참하게 된다.

세계의 영웅이 돼버린 그의 금의환향을 곰곰히 생각해보니 걱정이 앞선다.

수많은 환영대회, 끊임없는 방송국 출연과 인터뷰 공세, 청와대 만찬을 비롯한 각종 초청행사들. 정작 국내 대회출전은 곁가지다. 또다시 LPGA투어에서 격전을 치르기 위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쯤에는 몸과 마음이 엉망이 될게 분명하다. 이후 투어대회에서의 호성적은 기대하기가 어렵게 된다.

골프는 멘탈게임이다. 지형과 미세한 바람에도 영향을 받고 당일의 컨디션에 따라 같은 아이언클럽으로 치더라도 20m까지 거리차이가 난다. 리듬과 템포는 스윙의 생명이다. 피나는 연습과정을 통해 터득되며 몸에 배는 듯 하다가도 순식간에 빠져 나간다. 그래서 골프가 어려운 것이다. 인간의 신체로 구사할수 있는 가장 완벽한 스윙을 갖췄다는 타이거 우즈조차 지난해 4월 US마스터스 우승이후 각종대회에서 심심치 않게 예선탈락했다. 박세리를 위한 각종 귀국행사는 그의 골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놓쳐버린 리듬과 템포를 다시 되찾기 위해서는 또다른 노력과 고통이 뒤따른다.

박세리는 분명 20세기 우리의 마지막 영웅이다. 그러나 올해가 마지막은 아니다. 이제 21세이며 시작일 뿐이다. 사실 너무 빨리, 너무 높은 곳에 오른것도 마음에 걸린다. 오르막이 가파르면 내리막도 마찬가지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다.

20세기 마지막 영웅의 21세기를 생각한다면 사소한 것부터 배려해야 한다.

다만 본인이 원하고 올수밖에 없다면 오직 대회참가만을 위해 왔으면 한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향기나는 챔피언이 됐으면 한다. 많은 사람들은 US여자오픈을 감격속에 지켜보면서 한가지 아쉬움을 느꼈다.

우승퍼트직후 그린위에 무법자처럼 뛰어오른 부친과 껴앉고 흐느끼는 장면 뒤쪽에 어색하게 서있던 추아시리폰의 모습에서 패자를 먼저 격려하는 승자의 여유가 아쉬웠다. 워낙 극적인 승부였기 때문이라고 이해할수는 있지만 이같은 실수는 한번으로 족하다. 또한 미국선수들의 경우 우승상금의 일부를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상례화한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오늘의 박세리는 거대한 골프시장인 미국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들과 동화하고 그들의 관례를 존중할때 진심어린 박수를 받게 된다. 「골프만 잘치는 돈많은 영웅」이 아니라 주변을 생각하고 더불어 살 줄 아는 진정한 영웅이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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