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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 ‘흑색예수’(사연이 있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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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 ‘흑색예수’(사연이 있는 그림)

입력
1998.07.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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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탄가스 중독 병상서 얼굴 까맣게 탄 예수 체험김병종(45)씨는 89년 11월23일을 잊지 못한다. 36세의 서울대 미대 교수였던 그가 방황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시국은 어지러웠고 해결책은 없었다. 그림에 몰두하기 위해 신림동 남의 집 차고를 얻어 작업실로 쓰고 「닭장」이라고 불리는 고시원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로 했다. 고시원에 자리를 잡은지 이틀째 되는 날, 오전 1시까지 거리를 헤매다가 돌아와 잠이 든 그는 새벽녘에 깨어날 수가 없었다. 연탄가스 중독이라는 판단이 들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다. 「아, 이렇게 죽는가」하는 생각 뿐이었다.

그를 구해준 이는 한 학부형. 『신림동에서 오전 10시께 차나 한 잔 하자』던 김교수가 나오지 않자 그는 용산까지 갔다가 되돌아왔다. 결코 약속에 늦는 법이 없던 김교수에게 큰 일이 생겼다는 생각에서였다. 11시30분께 문을 따고 들어온 학부형에 의해 그는 병원으로 옮겨졌다.

독소가 파고 들어 퉁퉁 부은 다리를 옆으로 길게 절개하는 독소제거 수술을 3번이나 받은 그는 말못할 고통을 수없이 겪어야 했다. 혼자 있을 때 병상에서 굴러 떨어져 일어나지도 못한채 3시간 동안 괴로워 하던 그는 이상한 것을 보았다. 숯처럼 얼굴이 까맣게 탄 예수가 『네가 아프냐, 나는 네 죄로 인해 더 아프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나온 작품이 「흑색 예수」. 예수를 모독한다는 말도, 예수를 흑인으로 묘사해 신기하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흑색 예수는 고뇌에 찬 인간과 그를 감싸는 사랑의 실체였다. 연탄가스 중독사건은 그의 대표작 「생명의 노래」와도 관련이 깊다. 사고 후 3개월여, 처음 나선 산책길에 그는 언 땅에서 피어나는 노란 새 싹를 보았다. 「대자연은 창조주의 미술관」이라는 생각이 각인됐다. 생명의 터전을 그림으로 노래하고픈 생각에 그는 91년 이후 줄곧 「생명의 노래」 연작을 선보이고 있다.<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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