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모토(橋本龍太郞) 일본총리가 12일 실시된 참의원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퇴진할 뜻을 밝혔다. 96년 1월 「강한 일본」을 표방하며 등장했던 그는 강한 일본을 위해 추진했던 우물안 개구리식의 정책에 발목이 잡혀 2년6개월만에 물러나게 됐다. 국민의 지지를 잃은 정권의 퇴진은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로서는 그가 등장한 후의 껄끄러웠던 한일관계를 뒤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그의 추락은 경제실정에 대한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이다. 그는 강한 일본의 전제라고 할 재정재건에 집착, 소비세율과 의료보험률을 올리는 실책에다 경제침체와 전후 가장 높은 실업률 및 금융위기등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해 국민들의 불만을 샀다. 미국은 물론 국민들도 원하고 있는 영구감세에 대해서도 말을 바꾸는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등 아시아국가들이 경제위기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도 이를 외면했다. 보수정객답게 일본만 잘살면 된다는 식의 강한 일본 구현이란 헛된 이상에 매달려 경제대국으로서 이웃의 어려움을 모른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결국 시대를 역행하는 이같은 이상으로 정책판단의 눈이 흐려져 스스로의 발목이 경제실정이란 올가미에 걸리는 것을 몰랐다.
한일관계도 강한 일본과 우익의 뜻을 대변하는 행보를 거듭, 뒤틀릴대로 뒤틀렸다. 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선거가 실시된 12일에도 한국어선을 나포한 사실이 이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무라야마(村山富市) 전임총리가 애써 조성한 과거사청산 등의 화해분위기를 원점으로 되돌리고 일본에 보수 우익바람을 일으킨 것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오는 10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퇴진이 한일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양국간에는 군대위안부문제등 과거사청산은 물론 현안인 어업협정체결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어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인데, 하시모토 총리의 하야가 관계정상화의 한 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 한일양국은 하시모토 총리의 등장 후 양국관계가 소원해진 까닭을 살펴 다시는 이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하시모토의 뒤를 이을 정권은 역사적 현실적으로 경제대국인 일본이 해야할 역할을 인식,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주변국과의 과거사를 말끔히 청산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주변국들이 당했던 아픔을 외면한채 강한 일본의 구현을 통해 옛 영화를 재현하려 꿈꾸는 것은 아시아는 물론 일본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이러한 점에서 하시모토 정권 2년6개월은 좋은 교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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