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총리 오부치외무 유력속 당내 반발 만만찮아12일 참의원 선거에서의 참패로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정권은 96년 1월 발족 이래 2년 7개월만에 막을 내렸다. 그러나 당장 새 총리 후보가 뚜렷하지 않아 당분간 일본 정국은 공백 상태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
가토 고이치(加藤紘一) 간사장, 야마자키 다쿠(山崎拓) 정조회장, 모리 요시로(三喜郞) 총무회장 등 자민당 지도부도 사퇴 의사를 밝혀 새총리 후보 선정은 전체적인 당집행부 교체의 틀 속에서 이뤄지게 됐다.
파벌간의 절충·교섭으로 총리 후보와 당3역 등을 결정하는 전통적 방식으로 보아 앞으로 당내 각파벌간에 치열한 합종 연횡이 펼쳐질 전망이다.
가장 정상적인 절차는 자민당이 새 총재를 뽑아 임시국회에 총리 후보로 내세우는 것. 그러나 이번에 갈린 참의원의 임기가 25일까지여서 새 국회는 빨라야 27일에나 열릴 수 있다.
또 자민당 총재 선거에는 당대의원뿐만 아니라 참가비만 내면 일반 국민도 우편투표에 참여할 수 있어 시간이 걸린다. 이런 점에서 하시모토 총리가 당분간 당총재를 그대로 맡고 총리 후보만 내세울 수 있으나 그래도 2주일의 공백은 불가피하다.
한편으로 현재 자민당내에 뚜렷한 총리 후보가 없고 각 파벌 보스의 지도력도 많이 떨어져 있어 당내 절충이 빨리 진행되기도 어렵다.
현재 최대 파벌인 구오부치(小淵)파의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외무장관이 가장 유력한 총리 후보. 그러나 본인은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데다 반대론도 많다. 이번 참의원 선거 참패가 경제 정책의 실패에 따른 것이라는 점에서 경제 문외한인 그의 옹립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우선 무성하다.
그동안 경기대책을 두고 이런 저런 조언을 해 온 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 전관방장관이 후보로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모두 「경제 실정」으로 물러나는 하시모토 총리와 같은 구오부치파라는 점에서 다른 파벌의 반대가 부담이다.
경제전문가이자 미국의 은근한 지원을 업고 있는 미야자와(宮澤)파의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전총리의 이름이 새삼스럽게 거론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도쿄=황영식 특파원>도쿄=황영식>
◎엔화 한때 144엔대 폭락/가교銀·영구감세 지연우려
12일의 참의원 선거 참패로 일본 정국이 어수선해지면서 한동안 회복세를 보였던 엔화와 채권이 한때 크게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이 불안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13일 도쿄(東京)외환시장에서 엔화는 한때 달러당 144엔대까지 떨어졌다가 142.40∼43엔으로 마감됐다. 144엔대는 6월 16일 이래 처음이다.
이같은 시장의 반응은 우선 하시모토 총리의 퇴진에 따른 정치공백으로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한 가교은행 설립이나 경기부양을 위한 영구감세 등의 실현이 늦춰지리라는 판단 때문이다.
전후 최악의 불경기를 초래한 「경제 실정」으로 유권자의 심판을 받았지만 하시모토총리가 뒤늦게 적극적으로 추진해 온 경기부양책이 그나마 흐려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하다.
한편으로 자민당 의석이 과반수에 크게 모자라 참의원의 원만한 운영이 어려워진 것도 단기적으로 시장불안을 부르고 있다. 「가교 은행」 제도 도입을 위한 「불량채권 처리법안」등을 다룰 7월말의 임시국회는 특히 참의원에서 파란을 부를 전망이다. 공적 자금 투입과 경영부실에 빠진 채권자 보호를 위한 채무 변제 등에 대해 참의원 선거 승리로 힘을 얻은 민주당과 공산당 등이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또 자민당이 「협조」를 기대했던 공명당의 싸늘한 반응도 정국 운영 전망을 흐리고 있다.
다만 누가 새 총리가 되든 영구감세를 위한 적자국채 발행과 이에 따른 재정개혁법 동결 등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란 점이 시장의 장기적인 희망이다.<도쿄=황영식 특파원>도쿄=황영식>
◎고개숙인 하시모토 떠오르는 민주당수/하시모토 류타로예상밖 참패에 장수총리 마감
12일의 일본 참의원 선거는 하시모토 류타로(61) 총리와 간 나오토(51) 민주당 대표의 운명을 갈랐다. 한 사람은 곧 「흘러간 물」이 될 처지이고 한 사람은 차차기를 겨냥한 물결을 타고 있다.
참의원 선거 직전까지만 해도 하시모토총리의 정치 기반은 의외로 단단했다. 경제실정으로 불신임 결의안 제출과 「중국인 여성 스캔들」 거론 등 야당측의 공세가 이어지고 지지율은 20%대로 떨어졌지만 당내에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자리를 지키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는 전후 24명의 총리중 다나카 다쿠에이(田中角榮) 총리를 제치고 6번째 장수총리였다.
또한 6월 구마모토(熊本) 보궐선거에 이르기까지 최근의 6개 보궐선거에서 잇달아 승리했다. 특히 민주당이 새로 출범한 이래 최초의 정면대결이었던 구마모토 보선 승리로 민주당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아도 됐다.
최소한 개선 의석인 61석은 얻으리라는 「착각」속에 당내 반대파를 잠재우기 위한 미국방문 등 외교일정을 잔뜩 준비해 내년 9월말까지의 「속투(續投)」에 대비했다. 그러나 예상외의 참패는 96년 1월 취임 이래 2년7개월만에 그를 총리 자리에서 끌어 내리고 말았다.
그는 그동안 국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사토 에이사쿠(佐藤 榮作) 전총리의 정치적 동지였던 아버지 류고(龍伍)의 후광을 업고 63년 26세의 최연소 기록으로 중의원에 당선된 이래 자민당 엘리트로 성장해 왔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내각의 통산성 장관 시절 대미 강경자세로 강인한 이미지를 부각했던 그는 하룻밤 사이에 부쩍 늙은 것 같다.
◎간 나오토 당수/‘차차기’ 겨냥 제1 야당 굳히기
참의원 선거승리로 제1야당의 위치를 굳건히 하면서 「정권 연합」 구상의 발판을 마련한 간대표는 13일 즉각 야당 대표회동을 제안했다.
사회당이 기세를 떨치던 시절의 도이(土井) 다카코 위원장이나 지난해말까지 신진당 당수로서 힘을 발휘했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자유당 당수에 버금가는 무게다. 일본 정계에서 5선의원이 누리기에는 일찍이 힘들었던 자리다.
정치가로서 그의 장점은 때묻지 않았고 서민의 소리에 귀기울일 줄 안다는 점이다. 연립정권의 말석을 차지한 사키가케 출신으로 후생성 장관을 지내던 96년 「약해(藥害) 에이즈사건」과 관련한 정부의 책임을 국민앞에 솔직히 시인했다. 일본 국민들이 기대할 수 없었던 새로운 정치인의 모습이었다.
4월 통합 민주당의 얼굴로 본격적으로 차차기 정권을 겨냥한 총리후보로 부상했고 인기는 하시모토 총리를 앞질렀다. 그러나 당의 인기는 올라가지 않는 이른바 「간민(菅民) 격차」에 시달려야 했고 이번에 해결 가능성을 찾았다. 도쿄(東京)공대 출신인 그가 바라보는 일본의 미래상은 「분권연방국가」. 중앙정부의 기능 대폭 축소와 지방권력의 강화가 핵심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의 일본판 「올리브 가지」 구상은 넘어야 할 산이 많다.<도쿄=황영식 특파원>도쿄=황영식>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