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국가차원서 기구 재구성 국내 유통실태 등 공개하고/규제물질 새기준 마련해야”내분비 교란물질을 뜻하는 환경호르몬이 무엇인지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지는 불과 서너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파장은 엄청나 시민단체와 민간전문가 뿐 아니라 정부에서도 대책마련을 위하여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정부는 환경부를 중심으로 「내분비계 장애물질 대책협의회」를 구성, 중장기대책을 발표하였다. 예전과는 사뭇 다르게 신속한 대처에 나선 것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아직 외국의 예와 비교해 볼 때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로, 대책협의회 구성이 지극히 관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민간전문가와 기업의 참여를 열어두고 있다고 하지만 그 비율면에서 정부관료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절박한 문제로 등장한 환경호르몬에 대해 적절한 대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더욱 광범위하고 균형있게 정부와 민간전문가, 시민단체, 기업이 참여하는 범국가적 차원의 대책기구를 재구성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대책기구의 법적인 지위가 보장되어야 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임시방편식으로 구성하고 조금 잠잠해지면 슬그머니 활동을 중단하는 방식으로는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두번째로, 대책 자체의 문제이다. 장기적인 차원에서의 연구와 조사 및 규제 방안 마련도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단기적으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부분에 대한 대책은 극히 미흡한 실정이다. 무엇보다 환경호르몬으로 알려진 화학물질의 국내 유통량과 사용실태에 대한 조사가 실시되어야 하며, 동시에 시중에 유통되는 상품들 중 내분비 교란물질의 함유가 추정되는 상품들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국민들에게 그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또한 국내 자연생태계에 대한 조사도 시급히 실시할 필요가 있다. 국내에서는 내분비 교란물질로 분류된 TBT(트리뷰틸주석)에 의한 고둥의 임포섹스 현상만이 보고되어 있는 실정이다. 자연생태계의 피해 정도는 인체 피해를 예측하는 하나의 좋은 척도가 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매우 시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대책협의회의 확대 재구성을 통해 현재의 대책 자체를 대폭 수정하여 새로운 대책 수립에 임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세번째로, 대책협의회의 환경호르몬 규제에 임하는 자세가 지극히 무책임하고 안이하다는 점이다. 환경부가 6월9일 발표한 규제 내용을 보면, 세계야생보호기금(WWF)이 환경호르몬으로 분류한 67종 가운데 국내에서 제조·수입하는 물질은 총 51종이고 이중 42종은 유해화학물질관리법 등 관련 법규에 의해 사용금지, 취급제한이 된 상태라고 밝혔다. 그리고 규제대상에서 빠진 9종중 비스페놀 A 등 4종을 관찰물질로 지정하였다. 이중에서 나머지 5종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도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문제는 현행 법규로 규제되고 있는 42종에 있다. 환경호르몬이 기존의 발암물질 기준치보다 수천배 내지 수만배 더 적은 농도로도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현재 규제되고 있는 42종의 물질에 대해서도 새로운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경부는 이러한 기본적인 상식을 무시하고 있다.
최근 컵라면 용기에서 환경호르몬으로 분류되는 스티렌다이머와 트리머가 검출된데 대한 정부의 대응도 국민의 건강보다는 업자의 이해를 우선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국민들은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혀 어찌해야 할지 몰라하고 있고, 업계에서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안전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부는 이런 상황이 무작정 지속되도록 수수방관만 할 것이 아니라 문제해결을 위한 적절한 대책수립에 적극 나서야 할 때이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때가 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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