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南 강경여론 자극 분열책” 판단/정부 곤혹속 “기존정책 일단 유지”김대중(金大中)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이 시련을 겪고 있다. 12일 동해 앞바다에서 발견된 무장간첩 시체가 햇볕정책에 또다시 먹구름을 몰고 왔다. 간첩 시체와 침투용 추진기는 북한이 잠수정 침투사건 직후에도 적극적으로 무력도발을 시도했다는 구체적 물증이다. 따라서 북한내 대남 온건론자들의 입지를 강화시켜 남북관계 개선을 꾀한다는 햇볕정책의 실효성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강해질 소지가 커졌다.
북측은 햇볕정책을 무력화하고, 남한내에 대북 강경여론을 자극함으로써 남북대결구도를 의도적으로 강화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 청와대의 시각이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이날 합동신문조의 조사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전제를 단 뒤 『북한이 햇볕을 싫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의 대남 침투는 내부 정치구조상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견해다. 통상적으로 북한군은 월·년 단위로 작전계획을 수립하는데, 북한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군부, 특히 대남 부서의 작전 일정을 한꺼번에 흔들어 놓을 만한 결정이 하루 아침에 내려질 수 없다는 것이 군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실적으로도 북한군은 낙후된 정보시설때문에 침투 이외에는 별다른 정보획득 수단을 갖지 못하고 있다.
또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는, 대남 적대감을 토대로 구축돼 있는 북한의 사회적 일체감에 손상을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김정일(金正日)의 「작전 자제」지시가 하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그래서 이번 사건이 남한 사회의 국론 분열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기획됐을 것이라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번 잠수정 사건에도 불구하고 남한 정부가 대북 정책의 유연성을 유지하자 대남 작전을 한층 강화했다는 관측이다.
지금까지 남한에서 강경론이 우세해지면 북한은 한반도 긴장 고조의 책임을 남한에 돌리면서, 대미 접근에 유리하게 활용하려 했다.
따라서 정부는 하루 아침에 강경보수로 대북정책을 돌려, 전처럼 혼선을 자초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정세현(鄭世鉉) 통일부차관은 『곤혹스럽지만 왔다 갔다 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북한이 쉽사리 내부 혼란의 가능성을 무릅쓰고 남한의 햇볕정책에 정치적으로 호응할 리 없다는 것은 처음부터 염두에 뒀던 일』이라고 말했다. 안기부도 9일 안보관계장관회의를 통해 북한의 침투와 테러에 대비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정차관은 그러나 이번 사건이 현대그룹의 2차 소 북송이나 금강산개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김병찬 기자>김병찬>
◎정부 각 부처 표정/“20일만에 또…” 당혹/국방부수뇌부 휴일 작전회의 분주/청와대 철통경계 지시속 신중자세
○…청와대는 12일 북한이 또 무장간첩 침투를 기도한 데 대해 철저한 경계 지시를 내리면서도 신중한 자세를 견지했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이날 오전 10시께 통합방위 본부로부터 무장간첩 시체와 침투용 추진기 발견 사실에 대해 1차 보고를 받은 데 이어 10시15분께 임동원(林東源) 외교안보수석으로부터 구체적인 상황을 보고 받았다.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통합방위 본부가 철저히 대처하라』고 지시했다고 박지원(朴智元)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청와대는 북측이 김정일(金正日)의 국가주석 취임과 녹음기를 앞두고 침투도발을 강화할 것이라는 점은 이미 예견됐던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천용택(千容宅) 국방장관이 방미중이어서 국방부에는 이날 안병길(安秉吉) 차관을 비롯해 합참 정보본부장과 작전본부장 등 수뇌부가 출근해 상황을 점검했다. 안차관은 미국의 천장관과 수시로 연락을 취하며 지휘를 받았다.
군 수뇌부는 이번 사건이 속초 잠수정 침투사건이 완전히 수습되기도 전에 발생하자 긴장속에 작전회의를 계속, 북한의 의도 분석에 분주했다.
김진호(金辰浩) 합참의장은 지휘통제실이 설치돼 있는 국방부 지하벙커로 나와 작전을 진두지휘했다. 합참은 오전 9시50분께 초기대응반과 위기조치반을 소집하는 동시에 상황을 전군에 알리고 군 정보기관을 총동원, 북한군의 동태감시를 강화했다.
합참은 또 오전 10시5분께 현지사단에 「진돗개 둘」을 발령했다가 오전 11시8분께 「진돗개 하나」로 작전 수위를 높였다. 오전 11시45분께는 현지군단에 「진돗개 둘」을 발령하고 전부대원을 정위치에 근무토록 했다. 합참은 6월 속초 잠수정 침투때는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지 않았으나 이번에는 공작원 등의 상륙침투 가능성에 대비해 「진돗개 하나」를 발령, 시체가 발견된 지역을 중심으로 즉각 수색작전에 나섰다.
○…통일부는 무장간첩 시체 발견소식을 접하자마자 비상연락망을 가동, 정세현(鄭世鉉) 차관 등 직원들이 속속 출근하는 등 긴박한 움직임을 보였다. 통일부 관계자들은 이 사건으로 햇볕정책이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오르지않을까 우려하는 모습이었다.<유승우·정덕상·권대익 기자>유승우·정덕상·권대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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