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축소·감원은 미봉책 지식정보사회 대응위해선 관료제 역기능부터 제거를”기획예산위원회가 지방정부 개혁에 나섰다. 기획예산위원회는 2002년까지 지방공무원의 30%인 8만7,000명을 감축할 계획이라고 한다. 의욕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지만 새정부출범이후 추진된 중앙정부의 개혁성과를 돌이켜보면 회의가 든다. 당초 정부는 국가 공무원 1만7,000명을 감축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석 달이 지난 지금 별 진척이 없다. 더욱이 기획예산위원회는 연말까지 중앙정부가 담당하고 있는 1,300여개의 업무를 지방정부에 이관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로 인한 재원과 인력의 재배치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대한 개편도 참담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이렇듯 정부개혁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개혁의 철학과 필요성을 이해하고 소신과 추진력을 갖춘 주체가 형성되지 않고, 기관 이기주의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정부개혁이 일부 부서의 폐지나 감원으로만 인식되어 이를 막아내어 소속 기관과 공무원을 보호하는 것이 각 기관장의 능력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기관장들은 소속 기관에 대한 피해를 줄여야 실세로 인정받는다. 이것은 깡패 문화이다.
지난해 말에 불어닥친 외환위기 때문에 정부를 개혁해야 한다고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정부개혁은 외환위기와 관계없이 이미 오래 전부터 요구됐었다. 정부개혁의 핵심목표는 기구축소와 인원감축이 아니라 관료제를 타파하는 것이다. 산업사회에서 필요로 했던 관료제는 업무처리가 느리고, 비효율적이어서 새로운 지식정보사회에 대응하지 못한다. 관료제는 규정과 절차에 얽매여 주민의 수요를 신속하게 충족시키지 못한다. 업무의 중복으로 낭비되는 인력과 예산이 엄청나다. 연공서열의 직업공무원제는 무능한 공무원의 도태마저도 불가능하게 한다. 정부의 규제가 심해 기업의 경쟁력이 저하한다.
정부개혁은 시스템을 바꾸어 이러한 관료제의 역기능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수행하는 업무의 내용과 흐름을 정확히 분석하여 정부가 간여하지 않고 생산과 공급을 완전히 민간시장에 맡길 업무, 정부가 공급에 간여하되 생산을 민간에 위탁해야 할 업무, 정부가 계속해서 생산과 공급을 직접 담당하되 그 과정을 개선해야 할 업무 등으로 구분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먼저 정해야 한다.
그런데, 기획예산위원회는 이러한 본질을 외면하고, 가시적인 기구 축소와 인원감축에만 집착하고 있다. 일률적으로 공무원을 감원하고 예산을 삭감하여 정부규모를 줄이는 것은 손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기존의 업무를 그대로 둔 채 공무원 수만 줄이는 개혁은 세수가 증가하면 중단된다. 중앙정부의 부처 통폐합이 이런 이유로 실패했는데도 불구하고, 기획예산위원회는 같은 방식을 지방정부에 다시 강요하고 있다.
금년 말까지 지방공무원을 10 % 줄이라는 행자부의 지시에 따라 지방정부들은 기구 통폐합과 감원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방정부들은 기존의 업무를 그대로 둔 채 기구를 통폐합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일부 지방정부는 감원 대상자에 대해 한동안 보직을 주지 않고 봉급만 지급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울러, 환경, 보건, 복지 등의 분야에 대해서는 앞으로 정부의 기능을 더 강화해야 하는데도, 부서와 직급을 불문하고 일률적으로 10%씩 감원하려는 지방정부도 있다. 공무원을 감축해야 할 상황에서 외부 전문가 영입을 계획하는 지방정부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기획예산위원회는 개혁을 일률적으로 강요하거나 단기적인 실적에 집착하지 말고, 개혁의 기본 방향과 인센티브를 개발하고, 제도를 보완해 개혁 마인드를 범정부적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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