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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 세계연극제/한국 ‘산씻김’ 뜨거운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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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 세계연극제/한국 ‘산씻김’ 뜨거운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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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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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으로 말하는 낯선문화”/“新­舊세계 너무 극단적 공존”/현지언론·토론회 핫이슈로/“전통에 현대접목 미흡” 우리공연 세계화의 과제로지난 달 26일 개막된 취리히 세계연극제(주최 국제극예술협회 스위스본부)에 극단 쎄실의 「산씻김」이 핫 이슈로 떠올랐다. 스위스는 물론 유럽연극계에 이질적이었던 한국연극은 「낯선 문화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하는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우리에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하는 문제로 되돌아왔다.

취리히의 유력 일간지인 타게스 안차이거는 6일자 문화면에 「낯선­입 속의 성게처럼」제하의 기사를 싣고 「산씻김」과 인도의 코러스 레퍼토리시어터가 고대서사시 마하바라타를 소재로 한 두 편의 작품을 집중조명했다. 기사는 세 작품을 『(머리가 아닌) 배(감성)로 말하는 연극』이라며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너무 극단적으로 공존하고 있다. 배는 즐거웠지만 솔직히 머리는 끊임없이 이해와 설명을 원했다』고 평했다.

이에 앞서 4일 주최측이 마련한 토론회에서도 「다국적문화의 문제」를 주제로 한 논쟁이 벌어졌다. 대상은 역시 한국과 인도의 연극이었다. 평론가 라인하르트 슈툼은 극단적으로 『유럽식 감성으로 프로그래밍돼 있는 상태에서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동아시아를 연극제에 양념치듯 초청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해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기회만으로도 소중하다』는 다른 토론자들과 격론을 벌였다. 스위스 헌법제정 1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도 지닌 올해의 취리히 세계연극제는 「다문화주의」라는 헌법정신의 취지를 잘 살렸지만 보수적이고 계산적인 취리히관객들은 「뭐가 남는지」를 따져보고 있는 셈이다. 「산씻김」을 연출한 채윤일씨는 『「산씻김」을 민속공연으로만 받아들이는 것같다. 앞으로는 해외에 언어 중심의 현대극을 보여주겠다』며 아쉬워했다. 많은 관객들은 씻김굿을 변형한 이 작품이 실제의 무속의식과 얼마나 다른지 궁금해 했는데 무엇보다 「산씻김」이 70∼80년대 전통문화를 빌려 군사정권에 저항하고자 했던 독특한 문화적 흐름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는 한국문화의 해외진출이 전통공연 중심에서 현대적 작품으로 바뀌면서 맞닥뜨리는 문제이기도 하다.

취리히 세계연극제는 우리 연극이 전통에서 형식을 빌려오는 것을 넘어 세계의 관객이 이해할만한 보편적 정서를 담아야 한다는 과제를 안겨 주었다.<취리히=김희원 기자>

◎폴란드극장의 ‘임마누엘 칸트’/역설로 뛰어넘은 언어장벽/유럽정신의 몰락 풍자 사실적 연기로 쉽게 풀어내

칸트가 눈수술을 받기 위해 아내와 앵무새를 데리고 미국행 배를 탔다! 실제로 칸트가 고향을 떠나본 적도, 결혼한 적도 없다는 걸 잘 안다면 이런 가정은 우습다. 그러나 웃음 끝에 섬뜩할 정도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취리히 세계연극제 중 4∼6일 샤우슈필하우스극장에서 공연된 「임마누엘 칸트」(폴란드극장)는 이러한 역설로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었다. 유럽의 사상을 통찰한 작품을 써온 토마스 베른하르트는 「임마누엘 칸트」에서 유럽정신 즉 합리주의와 이성주의의 몰락 내지는 현대와의 단절을 그린다. 칸트는 앵무새와 말하고, 그의 강연을 목빼고 기다리는 승객들에게 『망망한 대해에서 어떻게 생각을 할 수가 있겠느냐』고 소리지른다. 그리고 모든 승객은 술에 취해 선상은 난장판이 된다. 첨단기술과 물질주의 앞에서 계몽주의시대를 선도한 세기의 지성은 박물관의 유물에 불과하다는 암시다.

현대와 과거가 혼재하고 풍자적인데도 작품이 어렵지 않은 이유는 배우들의 사실적인 연기 덕분이다. 초상화에서 막 빠져나온 듯 근엄한 모습의 칸트는 배를 타자마자 앉을 자리의 위치와 각도까지 따지는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여 미국행에 불만을 표했다. 승객들은 유명스타를 대하듯 칸트와 사진을 찍고 싶어했고 칸트부인은 이같은 부러움을 한껏 즐기며 코를 높이고 거닐었다. 흰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은 나무상자 속의 남자배우(앵무새)는 체머리를 틀고 먼산을 보면서 칸트의 말을 따라했다.

폴란드에서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크리스티안 루파(연출)가 연출한 96년 초연작. 6일 공연을 본 문호근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은 『정교한 연출에 인간미를 담고 있는 수작』이라고 평했다.<김희원 기자>

◎부활한 150년역사 ‘벨린초나 시민극장’/인구 17,000명의 소도시 불구/140억 들여 30년만에 재개관/‘작은 스칼라’ 별칭 공연명소

티치노주(州)는 「스위스의 이탈리아」로 불릴만큼 풍광이 수려하다. 스위스의 남부로 이탈리아와 접경지인 티치노주에는 로카르노, 루가노등 세계적인 휴양지가 있다. 주도(州都) 벨린초나는 인구 1만7,000명의 소도시인데 이 곳에 「작은 스칼라」로 불리는 명소, 시민극장(Teatro Sociale)이 자리잡고 있다. 객석 370석에 불과하지만 생김새는 오페라극장을 줄여놓은 모양 그대로다. 1847년 지어진 이 귀여운 오페라극장은 최근 30년간 폐쇄됐다가 거금 1,500만스위스프랑(약 140억원)을 들여 보수, 지난해 10월 재개관했다.

서울의 동(洞)보다도 작은 벨린초나가 이처럼 엄청난 비용을 들여 극장을 되살린 까닭은 무엇일까. 레나토 라이흐린극장장은 『시민극장은 스위스에서 손꼽히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유일한 이탈리안 극장』이라고 말한다.

극장재건이 가능했던 것은 150년 역사의 극장을 헐 수 없다는 주민들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지방정부와 기업이 보수비용의 95%를 후원해 준 덕분이다. 극장은 시민극장재단이라는 민간단체가 소유하고 있지만 시·주 정부가 운영예산을 지원한다. 가장 큰 후원자는 크레디트스위스은행과 미그로스라는 유통체인회사이며 1년에 50프랑씩 내는 후원자들로 구성된 후원회도 재단운영에 참여한다. 이렇게 재건된 「작은 스칼라」엔 지난 시즌(97년 10월∼98년 5월)에 연극 음악 현대무용 등 107편의 각종 공연이 열렸다. 시민극장은 1월을 중심으로 시즌을 나눠 클래식등 진지한 프로그램, 재즈 코미디등 대중적인 프로그램을 무대에 올린다. 극단 쎄실의 「산씻김」도 5일 이 극장에서 공연됐다.

벨린초나 시민극장은 북부 이탈리아인들도 즐겨 찾는다. 로카르노, 루가노에도 극장은 있지만 영화중심이고 벨린초나는 「아름다운 곳」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산기슭에 고스란히 보존된 중세의 성채, 강렬한 햇살, 포도밭과 야자수, 소도시 특유의 조용함을 원하는 관광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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