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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50년,하지만…/정종섭 건국대 교수·변호사(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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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 50년,하지만…/정종섭 건국대 교수·변호사(한국논단)

입력
1998.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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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들판을 거닐다보면 가끔 한 곳에 별을 쏟아부은 듯이 피어있는 꽃들을 볼 때가 있다. 그 때마다 어떻게 하여 꽃들이 한자리에 이렇게 소복이 피어나 있을까하고 탄성을 지른다. 이런 경탄의 장면은 인간의 역사에도 있다. 세계사의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어느 한때에 꽃같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피어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연 경우가 있다.풍요와 평화속에서 로마 문명이 최고도에 달한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절정은 5현제(賢帝)의 등장으로 이루어졌다. 서기 96년부터 180년까지 네르바­트라야누스­하드리아누스­안토니누스 피우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로 릴레이 같이 이어지는 80년이 넘는 빛나는 기간에 인간의 예지와 지성은 불을 뿜고 문학 예술 건축 기술 등은 눈부시게 발달했다. 근대로의 문을 연 피렌체의 르네상스에서도 이같은 모습을 본다.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와 같은 거장과 메디치가를 중심으로 한 플라톤 아카데미의 인재들은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었다.

근대 국민국가의 탄생에서도 이런 모습을 발견한다.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아메리카에 대통령 헌법을 만들어 탄생시킨 불세출의 인물들의 활약이 그것이다. 워싱턴 애덤스 제퍼슨 메디슨 먼로 퀸지 애덤스로 이어지는 걸출한 대통령들의 행진이 오늘의 미국을 있게 한 기초를 다져놓았다. 워싱턴에서 퀸지 애덤스까지 40년 동안 있은 이런 영웅들의 행진은 세계사의 희귀한 장면이다. 나라를 설계한 국가디자이너들이 바통을 주고 받으며 순차로 대통령이 되어 투철한 국가철학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손수 나라를 반석위에 올려놓은 이 장면은 그 자체가 예술같이 아름답다.

국가의 설계도면을 뒤적거리는 것이 직업인지라 제퍼슨이 살다간 몬티첼로 언덕을 오르내리면서도 미국과 한국의 설계도면을 대조해보고 같은 대통령제국가에서 어째서 하나는 꽃을 피우고 하나는 계속 죽을 쑤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기도 했다. 미국과 한국을 비교하는 일에는 온갖 이야기들이 있지만, 나라세우기에서 결정적인 차이는 나라의 밑그림을 제대로 그린 디자이너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것에 있는 것같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헌법을 제정하고 나라를 세운지 50년이 되는 해다. 헌법을 만들고 나라를 세운 과정이 전후 냉전논리에 따라 이루어지고 그나마 졸속으로 치러져 나라를 세우면서도 국민들이 가치있는 합의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장기간에 걸친 독재와 권위주의통치는 대통령을 「민족의 지도자」로 변질시켰고, 국민을 주권자의 지위에서 밀어냈다. 9차례에 걸쳐 헌법을 뜯어고치고 야단법석을 떨었으나 헌법이 최고의 나라법으로 제자리를 잡아간 것은 헌법재판소의 헌법재판이 시작된 1989년부터였다.

50년 된 나라라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다. 나라라는 것을 만들기는 했지만 설계도 이상할 뿐만 아니라 기둥도 제자리에 세워져 있지 않고, 공법 역시 날림이다. 대통령제국가에서 부통령을 없애버리고 세계 유례가 없는 국무총리를 지금까지 두고 있는 것이나, 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직선 대통령을 두면서도 여전히 30∼40% 지지율밖에 얻지 못해 임기 내내 정당성 시비에 시달리는 선거제도를 두고 있는 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다.

김대중정부도 김영삼정부에 이어 「제2의 건국」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나라 다시 세우기는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된 국가디자이너와 이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 가능하다. 헌정 50년, 이제 나의 조국 대한민국에서도 나라를 제대로 디자인하고 실행에 옮길 아름다운 사람들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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