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과 사정의 바람이 다시 일고 있다. 죄가 있으면 벌을 받아야 사회에 기강이 서는 것이므로 질서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범법자를 다스리는 일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사회적으로 이름있는 인사가 일단 검찰에 소환된다고 하면 재판의 절차를 밟아보기도 전에 이 사람은 이미 유죄판결을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신문을 비롯한 모든 언론의 매체가 그를 죄인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설사 그가 대법원에까지 가서 무죄가 확정되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언론이 크게 다루어주는 일이 없으므로 시민들의 의식속에 그는 언제나 죄인으로 남게 마련이다.
검찰에 소환되었다는 사실하나 때문에 겁에 질려 검찰청사의 문에 들어서는 사람을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여럿 달려들어 사진을 찍는다. 범법자로 몰린 몸이 사진을 찍히기 위해 서라는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 그 고통은 또 얼마나 큰 것일까. 검사 앞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옷을 단정하게 입고 머리를 빗고 구두를 닦아신은뒤 출두하는 이 피의자의 인권은 문턱에서 부터 완전히 짓밟힌 것이나 다름없다.
검찰청 문에 들어설 때에도 당당했던 인사는 한보사태의 정태수씨 한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운동복 차림에다 운동화를 신었고 머리도 헝크러져 있었으며 여전히 한쪽 눈은 감고 있었고 무표정하기 짝이 없었다. 카메라앞에서 그는 누구보다도 당당해 보였다. 은행돈 5조7,000억원을 끌어쓰고 부도를 낸 사실에 대해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는 것이 분명하였다.
도주의 우려가 전혀 없는 사람들을 오랏줄로 꽁꽁 묶어 법정으로 끌고 가는 관례는 충무공 이순신이 옥고를 치르던 그 옛날부터 있던 법일까. 우리도 그동안 서양에서 많이 배웠으니, 「유죄판결이 나기 전까지는 무죄」라는 단순한 법의 원리를 명심하여 개혁과 사정의 대상이 되어 이리저리 끌려다니는 사람들의 인권도 존중해야 마땅하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소환·구속·수감·재판 등의 절차를 밟았다면 대한민국 국민 중에 신변이 영원히 안전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인권은 남을 위해서보다 저 자신을 위해 존중돼야 마땅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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