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외교는 첩보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치열한 정보쟁탈전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미 외신들은 서울이 러시아의 극동 첩보기지화하고 있음을 그간 여러 차례 보도한 바도 있다. 「외교관계에 관한 빈협약」 제3조는 『공관이나 외교관은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취득한 접수국의 정보를 파견국에 보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늘날 유능한 외교관이란 주재국의 각종 유익한 정보를 가장 빠른시간내에 「잡음없이」 본국정부에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러시아가 4일 조성우(趙成禹) 주러 참사관을 「비우호적인 인물(persona non grata)」로 규정하고 추방결정한 것은 양국의 기존우호관계를 해치는 유감스런 조치다. 러시아측은 추방이유로 조서기관이 「통상적인 외교관 활동의 범위를 벗어나는 행위」를 했다고 밝히고 있다. 흔히 간첩행위등을 외교적 수사(修辭)로는 이렇게 표현하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조서기관에 대한 러시아정부의 입장은 분명한 것같다. 우리는 조서기관의 어떤 행동이 러시아국법체계에 저촉되는 것인지 지금 당장 알 길이 없으나 몇가지 석연찮은 대목에 우선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먼저 현지 외교가에서는 조참사관의 추방이 러시아 외무부와 보안국(FSB)의 알력에 따른 「희생양」일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FSB가 활동범위를 넓히려 하자 외무부가 제동을 걸어 양부처간에 반목과 갈등이 생겼다고 한다. 설령 러시아의 양기관간에 그런 갈등양상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전적으로 그들 내부문제다. 외국 공관원이 이들 알력에 희생양이 될 수는 결코 없는 일이다.
더구나 빈협약 제29조가 「어떠한 경우에도 외교관은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음에도 조서기관이 2시간동안 강제조사를 받은 것은 명백한 국제법 유린행위다. 러시아당국이 또 조서기관 모습을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개한 것은 한국외교관의 명예를 고의적으로 훼손한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 당국에 엄중항의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한·러관계가 이번사태로 악화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양국이 현명한 대처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양국은 90년 수교이래 상호이해와 교류의 폭을 넓혀왔다. 양국간의 사실관계 축적과 발전은 한반도 안정을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이런 가운데 이번 사건과 같은 돌출 악재는 매우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까지 드러난 갖가지 정황은 러시아가 과민반응을 보인 것으로 가닥이 잡혀가는 듯하다. 양국이 슬기로운 해결책을 마련하기를 거듭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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