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위원회 앞에서는 금융노련 소속 금융인 2,500여명이 집회를 열었다. 「관치금융이 금융부실의 가장 큰 원인인데도 성실하게 본분을 다해온 금융인들이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외침은 분명 호소력을 지닌 것이었다.하지만 이곳에서 몇 블록 떨어지지 않은 장은증권에서는 이들의 목소리를 무색케하는 상황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날 전격적으로 영업정지된 장은증권을 찾은 고객들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어제까지 자리를 지켰던 직원들은 대부분 눈에 띄지 않았다. 이들은 일방적인 금융구조조정에 항의하기 위해 금감위 앞 집회장에 간 것이 아니었다. 바로 전날 퇴직금의 몇배씩을 「명예퇴직금」으로 챙겨 야반도주하듯 직장과 고객을 팽개치고 사라진 것이다.
감독당국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완벽한 작전이었다. 증감원 관계자는 『전직원이 사표를 냈다기에 선별수리를 통해 인건비를 절감하려는 것인줄 알았다. 뭔가 이상하다는 눈치를 챘을 땐 이미 돈을 나눠 갖고 자진해서 영업정지 요청을 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영업용 순자본비율 업계최하위에다 자산·부채를 정리하면 고객예탁금을 다 내줄수 있을 지도 확실치 않은 증권사가 노사일심동체가 돼 돈잔치를 벌이고 스스로 문을 닫은 것이다. 가교종금사의 한 임원은 『금융인의 수준은 곧 금융의 수준』이라며 『이런 금융인들이 있었기에 관치금융이 기승을 부린 것 아니겠느냐』고 개탄했다.
노동계는 금융구조조정에 반발, 연대투쟁을 예고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된 이들의 허탈과 분노를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제2, 제3의 「장은증권맨」들이 나타날때마다 공감대는 분노로 바뀐다. 장은증권직원들은 명예퇴직금은 챙겼지만 본인과 금융인의 명예에 치명상을 입혔다. 이들에게는 장은증권에 마지막으로 근무했다는 사실이 평생 짐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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