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지 보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몰려 다니며 말썽만 피우는 젊은이들을 다룬 코미디였다. 무슨 일인가를 시작한 그들은 길거리에서 전단을 나눠 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받자마자 쓰레기통에 버린다. 한 녀석이 전단을 꼬깃꼬깃 구겨서 나눠 준다. 그러자 사람들은 궁금해 하며 전단을 펴서 읽어 본다. 지하철 입구에서 전단을 나눠 주는 사람들을 보면 이 영화가 생각난다. 받지도 않으려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종전엔 주로 아주머니들이 전단을 나눠 주었는데 요즘은 회사원 처녀등으로 다양해졌고 내용도 가지가지이다. 이들 중에서 어느 날 보이지 않는 사람은 퇴출당한 사람이리라. 아니 그 사람의 고용주나 소속회사가 퇴출당했는지도 모른다.갑자기 레드 카드를 받은 사람들이 고개를 떨군채 퇴장하고 있다. 월드컵축구가 「감독들의 무덤」이라고 말하지만 차범근감독도 도중하차했고 임기중에 물갈이를 당한 사람들이 많다. 초등학생들이 담임교사 퇴출을 외치는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교육부는 자질부족교사를 대기발령하겠다고 한다. 충청은행의 한 지점장이 인수팀에 잘 협조해 신용을 지킬 줄 아는 금융인이라는 칭찬과 함께 「아름다운 퇴장」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누구나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물러나면 어디로 간단 말인가. 우리에게는 옛 선비처럼 돌아갈 전원이 없다. 타발적인 퇴장을 하면서 품위와 평온을 지키기도 어렵다.
자본주의사회에서 퇴출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임을 확인하면서 생계를 운영해가는 활동노동으로부터의 퇴장을 뜻한다. 즉 노동의 종말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의 저서 「노동의 종말」은 피곤을 모르고 임금도 안 받는 기계들이 인간의 노동을 빼앗아가는 사회를 다룬 것이지만 이 시대의 한국인들에게는 그 말이 절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리프킨은 그러나 희망을 가지라고 말한다. 노동의 종말은 문명화에 사형선고를 내릴 수도 있지만 동시에 새로운 사회변혁과 인간정신의 재탄생의 신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 학자들이 지금과 다른 새로운 자본주의를 이야기하고 있다. 영국의 경제평론가 찰스 핸디는 「헝그리정신」이라는 저서에서 앞으로는 공동체의 이익에 봉사하는 민주적 가치관을 지닌 자본주의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진정으로 인류행복에 기여하는 기업이나 개인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그는 『문제는 돈이 아니라 정신의 빈곤』이라고 말했다. 필요한 것은 인류를 위해 기여하는 성숙한 의식과 가치관을 갖춘 「올바른 이기주의(Proper Selfishness)」라는 것이다.
최근 다녀간 프랑스의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한국의 문화주체성과 경제위기」라는 강연에서 한국은 유교주의적 중앙정치가 개인주의와 다양성을 배척해 온 것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한국상품이 잘 팔리지 않는 것은 독특한 문화적 부가가치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시대에는 문화예술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인들은 뛰어난 예술적 창조력을 갖고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문화예술에 더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메시지이다.
지금의 구조조정이나 감량경영, 정리해고는 엄밀하게 말해 인간을 폐기처분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진정 폐기하고 퇴출해야 할 것은 돈을 제일로 알아온 생활방식이며 퇴출로 인해 심각해지는 인간성의 황폐화와 공동체의식의 파괴이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려면 개인주의와 다양성을 부추기고 문화예술의 힘을 되살려야 한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가 급한 사람들에게는 공허한 말이겠지만 그러나 어쩌겠는가. 남은 사람들은 나간 사람들의 몫까지 더 열심히 일하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이 퇴출시대를 견디고 이겨내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에 대한 존중, 문화예술의 힘에 대한 믿음과 육성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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