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한 中企 사장 귀신·다이어트 귀신 등/부조리한 현실이 ‘귀신’을 만든다귀신이 많아졌다. 60년대 한국영화의 괴기담을 만들어 냈던 백발의 처녀귀신이니 구미호들이 한동안 코미디와 얼치기 미스터리 프로그램을 떠돌다 98년 여름 영화로 속속 돌아오고 있다.
암담한 교육현실이 비애 차원을 넘어 공포임을 알리는 「여고괴담」(감독 박기형)의 여고생귀신은 학교에 나타났고, 자살한 귀신들이 「자귀모」(감독 이광훈)라는 모임까지 만들려 한다. IMF한파로 부도가 나자 자살한 한 중소기업인의 혼령인 영업귀신, 뚱뚱한 몸을 비관해 자살한 다이어티, 애인 앞에서 성폭행을 당해 목숨을 끊은 백짓장이 모였다. 「퇴마록」(감독 박광춘)에는 인간의 몸을 빌어 부활하려는 악령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들은 옛날과 다르다. 60년대처럼 더 이상 가정에 머물지 않는다. 담을 넘어 사회 곳곳에서 자신들의 한을 풀기 위해 공포와 살의를 내뿜는다. 여고생 귀신은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교사를 없애고, 백짓장은 치한들을 병들어 죽게 만든다. 한국영화에서 귀신은 다름아닌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항력적인 억압과 모순을 대신 해결해 주는 대리자이다. 결국 그들을 불러들이는 것은 「사회」이다.
서양의 뱀파이어와는 정반대로 한국영화의 귀신은 대부분 여자들이다. 그리고 남성을 주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양쪽 모두 공포와 성적 욕망을 결부짓는 것은 같지만 뱀파이어와 달리 제도와 가치의 억울한 희생자라는 얘기다. 때문에 서양의 뱀파이어나 드라큐라는 성적인 에너지를 괴기스런 분위기로 발산하고, 성적 욕망, 성의 정체성, 과학과 이성에 대한 비판, 인간구원의 문제에 매달리지만 한국의 귀신들은 개인의 한을 통해 전근대적인 가치관과 체제를 비판한다. 그러면서 그 체제에 자신이 편입되길 간절히 갈망하는 모순을 드러낸다.
「월하의 공동묘지」(67년)부터 제목까지 비슷한 「월녀의 한」(80년) 「원한의 공동묘지」(83년)까지 수많은 여귀들은 가부장제, 남성우월주의, 성희롱, 고부간의 갈등이 낳은 희생자들이었다. 여귀의 한풀이는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그 환상을 통해 여성관객들은 「공포와 전복」의 쾌감을 동시에 느낀다.
이때문에 귀신영화를 정치적 코드로 읽는 시각도 있다. 신상옥 감독이 만든 일련의 영화가 특히 그렇다. 박정희정권 시절 나온 「천년호」(69년)와 「이조괴담」(70년)은 폭정과 독재의 신라 진성여왕과 조선 연산군시대를 배경으로 삼았다. 김소영(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씨는 『60년대 후반부터 귀신영화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들이 조선사회의 계급변화와 새로운 가치관이 태동하고 갈등하던 18세기 전후를 배경으로 삼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한국영화의 여귀들은 결코 전복에 성공하지 못한다. 아니 그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들의 한은 기존 질서에 편입되지 못한 억울함이며, 『너는 내 며느리다』라는 시아버지의 한 마디에 눈 녹듯이 풀려 버리는 응어리다. 그게 아니면 기존체제를 받치고 있는 이데올로기(불교 도교 무속)의 힘을 빌린 「퇴마사」에 의해 가차없이 쫓겨난다. 「여성의 억압」은 풀어지지 않는다.
이 공식에 가장 충실한 것이 「전설의 고향」. 민담형식을 빌린 이 드라마에서 귀신은 유교적 봉건사상에 충실한 권선징악의 가치관을 알려준 뒤에 자신을 희생한다. 영화에 돌아온 귀신들은 어떤가. 그들은 이제 가부장제나 성차별에 의한 희생물이 아니다. 현대사회의 억압과 소외가 낳은 새로운 희생자들이다. 이들은 살아서는 갖지 못했던 공포를 무기로 비슷한 상황에 놓인 동시대인들에게 억압을 해소하고 소외에서 탈출하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물론 할리우드의 테크놀로지와 괴기영화의 성적 욕망을 홍콩의 「천녀유혼」처럼 변주한 「구미호」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귀신의 악마성을 버리는 이야기도 있다. 「여고괴담」과 「자귀모」의 귀신들도 종교나 주술에 의해 쫓겨가기보다는 인간의 아름다운 마음에 감동해 악의 실행을 포기한다. 그래서 한국영화속의 귀신들은 두렵기보다 측은하고 이질적이지 않다. 우리의 현실은 이런 귀신을 자꾸 만들어 낸다.<이대현 기자>이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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