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국가주도 경제 한계에/성장신화 ‘外華’ 불구/정실주의·부패·담합 등/도덕적 ‘內貧’에 휘청/정체성 개혁 기로에60년대 이후 30여년간 동아시아 각국은 대부분 연평균 8%의 경이적 성장 신화를 이루어냈다.
자연히 서방은 동아시아의 특별한 성장비결과 배경을 규명하기 위한 동아시아 발전모델에 대한 담론이 풍미했다.
일본을 선두로 신흥공업경제군(NIEs)의 「네마리 용」이 뒤를 따르고 중국과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국가군이 3진을 형성해 선발경제를 모방하며 성장한다는 「기러기 편대 성장론」이 대표적이었다. 또 유교자본주의론이 등장하고 90년대초 싱가포르는 가족주의에 기초한 공생주의, 즉 개인에 대한 사회와 국가의 우위 등을 「아시아적 가치」라고 주창했다.
이때도 이미 아시아적 가치론은 개발독재와 권위주의 정권을 합리화하려는 정치 이데올로기라는 비판이 있었으나 「재야의 목소리」로 치부됐다.
개념의 혼란과 나라별 차이는 있지만 동아시아 각국 경제의 특징은 권위주의 정권 아래 집중적·우선적 자본배분을 통한 수출주도형 압축성장 전략으로 생각됐고 세계의 찬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97년 「기러기편대」가 태국인도네시아한국 순으로 환란(換亂)에 힘없이 무너지고 「기러기 편대장」 일본마저 휘청거리자 아시아적 가치와 동아시아 발전모델은 순식간에 아시아위기 원인론이나 아시아경제 붕괴필연론으로 뒤바뀌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의 논객들은 아시아 금융관행과 경제구조의 바탕인 정실주의(cronyism), 부패(corruption), 담합(collusion)의 3C로 대표되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위기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재벌, 족벌체제, 정경유착, 관치금융 등 각국의 경제적 비민주성·불공정성이 파헤져진 끝에 인도네시아에서 5월 「아시아적 구악의 상징」이던 수하르토가 퇴진했다. 아시아 경제 위기가 아시아의 정치변동을 부른 사례다.
아직도 말레이시아의 모하메드 마하티르 총리는 아시아위기는 월스트리트의 국제금융자본과 미 재무부, IMF라는 새로운 제국주의적 복합체가 꾸민 음모라고 지적하고 『외국자본과 결탁한 개혁 반대』를 부르짖고 있다.
결국 아시아 경제위기는 아시아적 가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아시아의 위기는 급변한 국제 정치·경제 환경에 어떤 정치·경제·사회 체제로 적응할 것인가를 묻는 총체적 국가전략의 위기이자, 아시아의 정체성·연대성을 묻는 지역의 위기인 셈이다.<신윤석 기자>신윤석>
◎94년 아시아的 가치 논쟁/DJ “시장경제와 민주주주의는 동반자”/리콴유 “서구제도 무차별 강요는 잘못”
아시아적 가치에 관한 가장 유명한 논쟁은 94년 싱가포르의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와 김대중(金大中) 당시 아·태 평화재단 이사장이 미국의 권위있는 학술지인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를 통해 벌인 지상논쟁이다.
리 전총리는 먼저 3, 4월호에서 서구사회와 아시아사회의 문화적·정치적 차이를 강조하고 『외국의 제도를 적응될 수 없는 곳에 무차별적으로 강요하지 말라』며 아시아의 특수성을 주창했다.
이에 대해 김 이사장은 11, 12월호에 반론을 기고, 리 전총리의 주장은 아시아에 서구적 민주주의가 부적합하다는 「궤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장은 『아시아에도 민주주의적인 철학과 전통이 풍부하다』며 『서구 민주주의보다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로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새로운 세계경제질서 하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유가 보장되고 정보가 물흐르듯 흐를 수 있어야 하며, 창의력이 억제됨이 없이 발휘되어야 한다』며 『이같은 것들은 민주적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시아는 민주주의를 수용하는 방법 외에 현실적 대안이 없고 민주주의는 치열한 경쟁의 시대로 접어든 세계 경제질서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건』이라는 당시 김이사장의 논조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함께 가는 것』이라는 그의 신념이 되었다.<신윤석 기자>신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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