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미 대통령이 고색창연한 도시 시안(西安)에서부터 중국 방문을 시작한 것은 인상적이다. 중국을 이해하려면 7개 왕조가 명멸했던 고대 중국의 심장부부터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진시황릉 부근의 병마용(兵馬俑)에 들어가 부인 딸과 함께 사진을 찍는 모습도 친근하다. 때 맞춰 뉴욕 타임스는 서로 『병마용의 최초 발견자』라고 우기는 두 사람에 대한 기사를 싣고 있다. 61세와 70세인 이들은 모두 양씨이고, 병마용 복제품가게를 하고 있다.■나이 많은 양씨는 『다른 사람은 믿지 말라』고 강조한다. 이 신문은 그가 최초의 발견자임을 증명하는 방법은 간단하다고 보고 있다. 본인이 그 말을 계속 반복하고, 은밀히 사람을 시켜 그 말이 사실인 것 같다고 소문을 내는 것이다. 반면 젊은 양씨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자세히 설명하는 방법을 쓴다. 74년 3월 큰 가뭄이 들어, 밭에서 우물을 파다가 토용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두 사람은 서로 다투지만 한 가지는 일치하는데, 그것은 농사를 짓는 대신 기념품가게를 하며 사진집에 사인을 해줌으로써 돈을 버는 것」이라고 결론을 짓고 있다. 병마용 주변은 어느덧 많이 상업주의에 물들어 있다. 몇해전 이 병마용에 들렀다가 객기를 부린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사진촬영을 못하게 해놓고 턱없이 비싼 값에 사진집을 팔았다. 그 사진들도 마음에 들지 않아 몰래 사진을 몇장 찍었다. 돌아오는 길에 보니, 어찌된 일인지 카메라 뒤뚜껑이 열려 있었다.
■급히 테이프를 구해 뚜껑에 붙이고 돌아와 카메라를 수리했는데 사진집 4배 정도의 돈이 들었다. 또 사진을 찾고 보니 놀라워라, 다른 것은 괜찮은데 진시황 병마용에서 찍은 4 컷에만 빛이 들어가 사진이 되지 않았다. 사필귀정일 수도, 우연일 수도 있었으나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서늘해진다. 6,000점의 건장한 병마군단 모습이 떠오르면서, 당시의 교만이 부끄러워지고 문화유물에 대한 신비감과 숙연한 깨우침이 고개를 드는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