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년전 벽화에서 캐낸 ‘발해의 꿈’/우즈벡 古代 궁전벽화속 우연히 만난 고구려인 2명/7세기말 국제관계사와 함께 발해건국의 이념과 문명 흥미진진하게 펼쳐내『난 오래 전부터 이 벽화에 나오는 두 사람이 발해를 건국한 고구려 임시정부의 사절일 거라고 가정했다』
상상력이야말로 창조의 원천이다. 김영종(43)씨의 장편소설 「빛의 바다」(사계절 발행·전2권)는 김씨가 우연히 접했던 한 장의 그림에서 비롯됐다. 김씨는 그림을 보고 키운 상상력으로 올해로부터 꼭 1,300년 전이었던 발해(渤海)의 건국사를 장편소설로 엮어냈다.
65년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아프라시압(사마르칸드)에서 690년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궁전벽화 하나가 발견된다. 왕을 알현하러 온 각국 사신들의 모습이 그려진 채색벽화이다. 오른쪽에 고대한국인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서 있다. 안시(송골매) 깃털모자를 쓰고 허리에 장검을 꽂고 있다.
「빛의 바다」에서 이들은 각각 「양울력」과 「하달탄」이라는 인물로 그려진다. 소설은 평양성이 함락되던 668년 주인공 「을천」이 태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을천은 어머니에 이끌려 후에 발해가 세워진 중국 요서지역 영주땅, 외몽골지역 투르크의 수도였던 외튀켄산, 실크로드의 요충인 투르판과 사마르칸드까지 수만리 유민의 길을 떠나며 고구려 부흥운동의 조직원으로 활약한다. 을천은 스물여섯살 때 사마르칸드에 고구려임시정부의 사절로 온 양울력과 하달탄을 만나고, 그들의 장렬한 투쟁은 임시정부군의 당군 격파에 이은 698년 동모산에서의 발해 건국으로 이어진다….
김씨는 이같은 얼개에 7세기말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국제관계사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허구인데도 생생한 것은 바탕에 역사적 사실이 되살아나게 했기 때문이다. 그는 95년부터 3년6개월여 중국 몽골 티베트 우즈베키스탄을 답사하고 학자들에게 자문했다. 소설에 그려진 당나라 장안의 문화, 투르크의 제천의식, 사마르칸드의 궁정의식, 중앙아시아 초원과 오아시스를 오가는 대상(隊商)의 모습은 또 다른 역사·인문학적 재미를 제공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발해의 정신이다. 『그간 발해 건국은 영주땅에서 대조영(大祚榮) 무리가 갑자기 일어섰다는 식으로 다뤄졌습니다. 사서의 발해 관련 기사(記事)는 모두 해봐야 A4용지 2∼3장 분량입니다. 사료가 적고 연구도 부족해 중국 러시아는 발해를 말갈계 국가로 보고 각자 자신의 역사로 다루고 있습니다』. 자신은 발해의 의미를 영토확장이라는 좁은 시각에서 볼것이 아니라 건국의 이념적 토대와 문명을 당시 국제관계 속에서 종합적으로 조망하고 싶었다는 것. 『고대 우리말로 빛의 바다를 뜻하는 「발해의 꿈」을 제대로 보아야만 고구려 멸망이나, 그와 너무도 흡사한 구한말 이후의 유민사등 민족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문학의 꿈을 키워오다 뒤늦게 쓴 첫 작품이라 부끄럽다며 책에 약력도 밝히지 않은 김씨는 사계절출판사의 전 대표. 대학을 두 군데 옮겨다니고 졸업못한 운동권 출신으로 82년 사회과학 전문 사계절출판사를 냈다. 93년 「반갑다 논리야」를 밀리언셀러로 만들어 화제가 됐던 그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출판사일은 부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손을 뗐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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