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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아 길을 묻는다’/김원일 첫 연애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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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아 길을 묻는다’/김원일 첫 연애소설

입력
1998.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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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속적 불륜… 가슴아린 사랑이야기/구한말 사랑의 도피 담아소설가 김원일(56)씨가 처음으로 연애소설을 한 편 썼다. 「사랑아 길을 묻는다」(문이당 발행)는 「마당 깊은 집」 「불의 제전」등 분단문제를 주로 한 우리 현대사의 아픔에 천착해오던 김씨가 작가생활 30여년만에 처음으로 쓴 남녀의 사랑, 그것도 불륜이야기다.

하지만 흔한 요즘 세태의 불륜은 아니다. 시간배경은 한반도가 일제에 강점돼가던 1905년을 전후한 구한말. 주인공인 마흔일곱의 사내 서한중은 경북 순흥 땅의 천주교 공소에서 자신보다 열세살 어린 사리댁을 보고 한 눈에 반한다. 「장옷을 반쯤 벗은 그 여인의 월태화용(月態花容)한 용자를 보는 순간 그는 너무 어리쳐, 홀연히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들었다 (…) 이 나이에 내가 무슨 이팔청춘이라고, 지성소(至聖所)에서 만난 지아비 둔 아녀자교우에게 음탕한 이심을 품다니…」. 소작농의 딸인 사리댁은 남자구실 못하는 노인 김참봉의 후실로 들어간 고통을 신앙으로 잊고자 하는 여인. 육자배기 가락으로 사리댁을 꼬드긴 한량 서한중은 『부인, 잠통(潛通)사실이 읍내에 퍼지면 우리는 줄행랑 놓는 길밖에 없소. 공소며 이웃들의 눈총과 험담을 어찌 견디겠소. 물고당해 죽으면 차라리 낫지』라며 도주를 꿈꾼다.

둘은 야반도주한다. 소설은 둘이 화전을 일구다 김참봉이 그들을 잡기 위해 풀어놓은 포수들을 피해 갖은 고초를 겪으며 달아나는 도피행로를 그린다. 결국 사계절을 한 번씩 넘긴 끝에 아이를 가지고도 변변히 먹지 못해 눈이 멀기 시작한 사리댁을 두고 서한중은 숨을 거두고 만다. 그가 친구에게 털어놓는 불륜도피행의 변은 이렇다. 『여자를 사랑한 것이나 창의궐기나 곡진한 정성을 다하기는 마찬가지야. 인생일사도무사(人生一死都無事)라…』.

작가는 구한말 간난의 민족사를 배경으로, 그것도 천주교신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성과 속을 끊임없이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려 한 것같다. 어쨌거나 운율을 살린 우리 옛말과 토속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 김씨의 문장은 옛 남녀의 사랑을 눈 앞에 보는 듯 그려놓았다. 젊은 작가들의 국적없는 섹스이야기를 비판하기 위해 이번 작품을 구상했다는 김씨가 컴퓨터를 사용해 소설을 쓴 것도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하종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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