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 퇴출은행의 간판이 내려지던 29일 우리는 슬픈 현실 앞에 착잡한 심정을 숨길 수 없었다. 철창이 내려진 은행점포 밖에는 돈을 찾으려는 예금주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아우성 치고, 점포 안에서는 퇴출에 항의하는 은행원들의 집단행동으로 수라장이 벌어지고 있었다.이번 은행퇴출조치로 1만여명의 은행원들이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지금까지 감량경영 차원에서 많은 행원들이 떠나갔지만 이번 처럼 금융권의 구조개혁차원에서 은행이 퇴출되고 종업원 전체가 통째로 거리에 나앉게 되기는 처음이다. 퇴출 은행원들이 느낄 고통과 좌절감·상실감은 상상하고도 남는다. 저마다 부푼 꿈을 안고 일하던 직장을 잃었으니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퇴출은행원들의 아픔과 분노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들이 보인 행동에는 찬성할 수가 없다. 인수은행팀의 진입을 막고, 컴퓨터 비밀번호를 바꾸고, 금고를 잠근 후 서류를 파기한채 집단휴가를 가는 바람에 인수작업은 물론 계속되어야 할 업무가 완전 마비됐다. 더구나 일부 퇴출은행은 계좌에서 수백억원을 꺼내 직원들의 퇴직금으로 주었다니 퇴출은행 임원들의 무책임한 행동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결국 퇴출은행 임직원들의 비협조로 은행인수업무는 지연되고 고객들은 큰 피해를 입고 있다.
은행퇴출조치는 건실한 은행을 키우기 위해서다. 퇴출은행 행원들의 반발에 직면한 정부는 인수은행에 최대한의 고용승계를 확약하도록 하고 있다. 구조조정과 함께 실업문제를 걱정하는 정부의 입장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은행부실의 한 원인이 방만한 인력관리에서 비롯된 점도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무리가 없는 고용승계여야 한다.
지금 은행의 구조조정은 한국경제 회생을 위한 필수 코스다.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 조건이기도 하지만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개혁작업이다. 금융기관이 왜곡된 금융관행을 고치고 건실한 경영을 하지 않으면 기업의 구조조정은 불가능하다. 앞으로 공공부문은 물론 민간부문에서 구조조정작업이 본격시작되면 지금 퇴출은행원들이 당하는 몇배의 고통이 예상된다.
퇴출은행 임직원들은 절망에서 벗어나 인수업무에 협력할 윤리적 법적 책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주기 바란다. 억울한 것으로 치면 주주와 일반국민도 마찬가지다. 지금 퇴출은행에 투자했던 주주들은 휴지조각으로 변한 주식을 참담하게 바라보고 있다. 또 퇴출은행의 부실채권은 결국 국민부담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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