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신기루였나… 30년 경제성장 1년새 ‘와르르’/泰 환란서 촉발 韓·日이어 中까지 위태/통화폭락→기업·금융부도→외자유출 악순환아시아의 미러클(기적·miracle)은 미라주(신기루·mirage)였는가? 21세기는 진정 아시아·태평양 시대인가? 아무도 「예스」라고 자신하지 못한다. 작년 7월 2일 태국 바트화 가치의 폭락과 함께 시작된 아시아 금융위기는 지난 30년간 쌓아온 아시아인의 땀과 눈물을 단 1년만에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배경으로 정치·사회적 안정을 이뤘던 아시아는 이제 「성공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아시아 금융위기 발발 1년을 맞아 「위기의 아시아」를 진단한다.
아시아 경제위기의 특징은 아무도 그 끝을 가늠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1년전 태국 정부가 바트화의 달러화 연동제를 포기했을 때 위기의 골이 이렇게 깊어질 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과 같다.
▷위기의 전개◁
태국이 12년간 지켜왔던 달러당 24.5∼25바트의 환율을 포기한 이유는 실물경제가 더이상 환율을 방어할 수 없는 상황에 달했기 때문이다. 태국 경제는 이미 96년부터 내리막길로 접어들어 무역수지는 96년 큰 폭의 적자로 반전됐다. 부동산 투기붐에 편승, 부동산회사에 엄청난 대출을 해준 금융회사들은 부동산가격 하락으로 대규모의 부실채권을 안고 있었다.
국제투기자본이 이를 놓칠 리 없었다. 바트화가 공격을 받자 태국 정부는 이자율을 높이고 보유외화를 매각하며 환율 방어에 나섰다. 이자율이 오르자 기업부도는 더 늘어났고 부실채권도 쌓여갔다. 96년말 330억달러가 넘었던 외환보유고는 97년 6월말 20억달러에 불과할 정도로 고갈됐다.
바트화가 폭락하자 곧이어 필리핀 페소화, 말레이시아 링기트화, 싱가포르달러화가 연쇄 폭락했다. 외환보유고가 800억달러가 넘었던 대만도 15%의 평가절하 조치를 취했다. 홍콩은 홍콩달러화의 방어를 위해 이자율을 크게 올려 주식시장의 폭락을 감수해야 했다. 마침내 97년 11월 지난 30년간 가장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아시아의 경제성장 모델」로 평가받던 한국마저 환율방어를 포기했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 일본에서는 산요(三洋)증권과 야마이치(山一)증권이 파산했다. 전후 최대의 부도사태였다. 이 과정에서 외채상환 불능상태에 빠진 태국과 인도네시아, 한국이 차례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이들 3개국이 IMF와 세계은행(IBRD) 등으로부터 받은 구제금융액수는 1,200억달러. 그러나 이같은 천문학적인 금액의 구제금융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 아래 이들 나라 정부와 국민들이 감당하기 힘든 가혹한 조건들을 달고 있다.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아시아 경제위기는 통화가치의 급격한 하락에서 비롯됐다. 이로 인해 외채상환이 어려워졌고 기업과 금융기관의 부도가 이어졌다. 부도가 남기는 것은 부실채권뿐. 은행의 부실채권이 쌓이자 외국은행들은 채권회수에 나서고 있다. 96년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5개국에는 930억달러의 외국자본이 들어왔는데 97년에는 거꾸로 120억달러가 빠져나갔다.
아시아의 경제기적을 낳았던 섬유 가전제품 반도체는 아시아 각국이 너도 나도 뛰어들며 과잉생산의 늪에 빠져 회복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작년말 달러당 125엔을 기록했던 일본 엔화는 지난달 15일 147엔대까지 떨어졌다. 엔화 가치의 하락으로 중국 위안화마저 흔들리고 있다. 중국 지도부의 거듭된 다짐에도 불구하고 위안화의 평가절하는 언제 터질 지 모를 「제2의 뇌관」으로 아시아 각국을 짓누르고 있다. 위안화가 평가절하된다면 아시아 각국 통화는 또 한차례 연쇄 폭락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작년 IMF의 구제금융과 외채협상을 통해 겨우 넘겼던 모라토리엄 상황이 다시 찾아올 지도 모르는 것이다.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박정태 기자>박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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