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미사일의 목표를 다시 조준하는 데는 10분도 안 걸린다』 한 외신이 전한 빌 클린턴 미대통령의 중국방문 분석 기사의 첫부분이다.클린턴과 장쩌민(江澤民) 중국국가주석이 27일 체결한 핵미사일 조준해제 협정을 빗대 이번 미·중 정상회담의 빈약한 성과를 꼬집은 것이다. 이 협정의 취지는 간단하다. 오해나 우발적 사고로 인한 핵미사일 발사를 막기 위해 조준 목표를 다른 곳으로 돌려 놓자는(detarget) 것이다. 핵탄두를 제거하자는 협정이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서로의 「의지」는 그대로 둔 채 혹시 있을 지 모를 「실수」의 가능성만을 미연에 막자는 것이다.
클린턴은 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미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중국 땅을 밟고 있다. 역사적 방중이다. 그러나 반응은 별로다. 워싱턴 포스트 보도를 보자.이 신문은 두 정상이 27일 공동기자회견 석상에서 천안문 사태 등 인권문제를 놓고 설전을 벌인 장면이 중국인들의 안방에 그대로 생중계된 것은 양국 관계의 돌파구를 연 「획기적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공동기자회견 내용보다 생중계에 가치를 둔 것이다. 홍콩에서 발행되는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는 「스타일(style)」은 「내용(substance)」이상으로 의미가 있다고 보도했다.
맞는 말인 지도 모른다. 클린턴은 해리 트루만 대통령 이래 가장 길다는 8박 9일의 외국방문 일정에서 정상회담 단 하루를 빼고는 주로 관광과 보통사람들을 만나고 연설하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시안(西安)의 진시황릉에 묻힌 7,000여 토용(土俑)을 부인과 딸, 그리고 장모까지 대동해 구경하면서 『인생은 짧은 것』이라고 감회에 젖었고, 농민들과 대학생들과 토론했으며 군악대의 지휘봉을 들었다. 그는 중국과 중국인들을 두 눈으로 「보기」를 바랬고, 중국은 「보여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사실 클린턴의 방중 목적을 제대로 설명하는 장면이 아닐 것이다. 하나의 에피소드에 불과할 지 모른다.
클린턴은 왜 중국에 갔을까? 방중을 연기하라는 국내의 반발과 별 성과가 기대되지 않는 「외유」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행정부의 대(對)아시아 정책을 입안한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소장 조셉 나이 교수는 이코노미스트지 최신호에서 이같은 의문에 우회적인, 그러나 명쾌한 해답을 내놓았다. 그는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BC 404)을 예로 들었다. 당대의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통찰처럼 아테네의 파워증대와 이에 초조함을 느낀 이 지역의 맹주 스타르타의 불안이 이 전쟁의 근본 원인이라고 단정했다. 즉 새로운 힘의 등장은 지역의 불안정을 가져오며 분쟁은 필연코 일어난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중국의 경제·군사적 부강은 21세기를 앞둔 시점에서 동아시아 각국은 물론 미국 외교정책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 지는 분명하다. 현재 동아시아에서 「슈퍼파워」 미국의 존재는 지역안정을 도모하고 있다. 합리적 수단을 통해 미국이 이 지역에서 일정한 힘과 압력을 행사하는 한, 중국을 포함한 역내 국가들은 안정에서 오는 혜택을 누릴 것이며, 강력한 도전자나 도전그룹은 생겨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이 천안문 사태 이후의 대(對)중국 봉쇄정책(Containment)을 계속해 중국을 적으로 대접한다면 중국은 미래에도 적일 것이며, 결국에는 이 지역에서 미국의 헤게모니(패권)를 빼앗으려할 것이다. 그러나 개입정책(engagement) 수준으로 전환한다면 친구는 되지 못할지언정 소득은 있다는 것이다. 친구도 적도 아닌 절묘한 관계의 유지, 그것은 핵미사일을 해체하는 것이 아닌, 조준 목표만 살짝 옆으로 돌려 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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