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한컴계약 경쟁제한 우려 국민정서 개입해도 안되지만 원칙없는 외자구걸도 곤란”한글과 컴퓨터(한컴)가 아래아한글 사업의 포기를 전제로 마이크로소프트(MS)로부터 자본참여를 받기로 했다는 발표에 대해 우려의 소리가 높다. 우리 소프트웨어 산업이 붕괴할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심지어 대국민호소문까지 나도는 것 같다. 아래아한글이 갖는 「표준」으로서의 의미나 문화적 파급효과 등을 감안할 때 그럴만하기도 하지만 상거래에서 이른바 국민정서가 개입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다 할 수 없다.
이번 사안은 아래아한글의 사실상 퇴장을 조건으로 한 MS의 지분참여가 핵심인만큼 이것이 경쟁정책적으로(우리나라 공정거래법상에서) 어떤 문제가 있는 가를 살펴보는 것이 순서라 하겠다.
MS가 한컴 주식의 일부를 취득함으로써 양자간에 기업결합이 이루어진다고 본다면, 공정거래법 7조의 적용을 받게 된다. 참여지분은 19% 정도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12조 사전신고 대상 (20%)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사전신고를 피하기 위해 투자규모를 맞췄다는 의혹도 있지만 별 의미는 없다. 7조에 의하면,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거나 강요 기타 불공정한 방법에 의한 결합은 금지되며, 다만 산업합리화나 국제경쟁력의 강화를 위한 경우 일정한 요건하에 허용될 수 있다. 한편 기업결합 여부와는 관계없이 아래아한글 저작권의 거래나 그와 같은 효과를 갖는 경우에는 불공정 거래행위 (경쟁사업자의 부당한 배제)에 해당될 수도 있다.
한컴MS의 경우에는 압도적인 아래아한글의 시장점유율때문에, 혹은 거래조건의 내용때문에, 경쟁제한성이 추정될 여지가 크다. 무엇보다 경쟁관계에 있던 품목의 배제를 조건으로 함은 시장경쟁을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효과가 강하다. 『아래아한글도 없는 한컴이 무슨 대단한 투자가치를 갖겠느냐, 오로지 아래아한글의 퇴장 자체가 투자목적일 것이다』는 지적이 적절할 것이다.
아래아한글의 경쟁력이 한계에 달해 이미 쇠퇴과정에 있다는 견해도 있는데, 그렇다면 이번 거래의 중요성은 그다지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MS가 아래아한글의 퇴장을 요구했음에 비추어 본다면 그 논리는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다.
배타적 거래, 끼워팔기, 가격약탈(무상공급 포함)등 MS의 시장지배욕은 이미 정평이 나 있으며, 90년대의 미국 경쟁정책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례로서 현재 소송이 진행중이다. 경쟁정책에 부주의하거나 거의 무시하는 듯한 (지배적 기업은 다른 경쟁기업과는 달리 어느정도 행동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지 않는) MS의 태도는 유별나기까지 하다는 지적도 있다.
원론적이지만, 그것이 소비자(한글이 국제공용어가 되지 않는 한 한국인)의 후생을 증진시키기위해 「필수적」이라는 논거가 양당사자들에 의해 제시될 수 없는 한, 문제의 반경쟁적 거래조건은 수정됨이 옳을 것이다. 이는 한컴이나 아래아한글이 아닌, 시장경쟁의 보호를 위한 것임은 물론이다.
굳이 이 거래를 허용한다면 결국 산업합리화 등의 요건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지만 무리가 따른다. 개정된 기업결합 심사기준을 활용하여, (한컴이 파탄상태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파탄회사에 대한 예외적 허용으로 접근함이 현실적일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경제공무원은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를 모두 갖고 있어야 한다」며 판단의 고충을 토로했다고 한다.
우리말과 밀접하게 관련된 문화상품, 즉 한글에 대한 애착이 합리적 정책판단을 흐리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론일 것이다. 그렇지만 반경쟁적인 거래조건을 용인하면서까지 거래를 허용하는 것이 외국인 투자유치라는 별개의 (바라건대 일시적인) 정책목적에 꼭 필요한지, 큰 효과가 있을지를 냉철하게 따져야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하고 싶다. 경쟁정책의 운용이 결코 배외적 국민정서에 좌우된 것처럼 오인되어서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원칙없는 무차별적 외자구걸이라는 비판을 들어서도 안될 것이다.<부산 동아대 교수·경제학>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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