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치산이나 남파간첩으로 붙잡혀 형을 살면서도 대한민국 국민이기를 거부하는 미전향 장기수들의 전향거부 이유가 공산주의 이념을 신봉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운좋게 북송된 이인모노인도 남한에 있을 때는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었다. 그들은 대부분 북쪽에 두고온 가족들이 마음에 걸려 전향을 거부하고 있다. 북한은 전향자 가족들을 「배신자 가족」이라는 낙인과 함께 정치범수용소나 산간오지 노역장으로 가차없이 퇴출시킨다. 이는 탈북자들의 입을 통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작년 귀순한 황장엽씨나 김덕홍씨등의 가족들이 어떤 대우를 받을까는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다.■북은 공작원들에게 체포될 때에는 자살로써 「공화국」을 수호하도록 강요한다. 그래서 소지품엔 유사시의 자살용 독약 앰풀이 필수적이다. KAL기 폭파범 김현희가 체포직후 소지한 독약으로 자살을 기도했던 일이나 부부간첩으로 남파돼 작년 11월 붙잡히자 몸속 은밀한 곳에 감췄던 독약으로 자살한 여간첩 강연정도 실은 북에 두고 온 아이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처럼 가족은 그 어떤 이념적 가치보다도 소중하다.
■이와는 다르게 아웅산묘소 테러범 강민철은 범행후 도주중 살상용이라 믿고 받았던 수류탄이 안전핀을 뽑는 순간 터지자 수사에 순순히 협조했다고 한다.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죽음이 강요된 현실앞에 강한 배신감을 느꼈음이 분명하다. 북한은 이처럼 공작원들에게 유사시엔 증거인멸을 위해 죽음을 택하도록 강요한다. 남겨진 가족을 볼모로 해서 말이다.
■이번에 잠수정 승조원 9명이 총으로 자살한 것이나, 또 96년 잠수함사건때 11명이 자살한 것도 동일범주의 사건임에 틀림없다. 한계상황에 몰린 이들이 『내한몸 희생해서 차라리 가족들이나…』하는 심정으로 일을 저지르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가족을 볼모로 한 패륜적 범죄행위가 언제쯤이나 끝날 수 있을까. 6·25 48돌이 지났지만 분단의 비극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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