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무법상태가 한달이상 지속되고 있다. 국회법은 의장단 임기만료 5일전까지 차기 의장단을 구성토록 명문화하고 있으나, 법정시한인 지난달 24일을 넘긴채 아직껏 의장단은 공석이다. 현행 법규정은 정식 의장단 구성이 안될 경우 이를 대행할 잠정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의장단 공석이란 곧 입법부 부재상태를 뜻한다. 이를 두고 「식물국회」니 「가사상태」니 하는 비유가 나오고 있지만, 국가기관의 초법적 부재사태는 비유를 허용할 여지가 없을 만큼 중대한 비상상황으로 인식해야 한다.무엇보다도 걱정인 것은 여야가 스스로 자행한 위법으로 인해 현재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있는 법안이 무려 263개나 된다는 사실이다. 특히 경제 구조조정을 뒷받침하기 위한 각종 개혁법안을 새로 제정하거나 개정하는 일이 시급하지만 입법주체가 없는 마당이니 경제위기 극복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국회가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은 여야의 당략대결 때문이다. 정권출범 초기 국무총리임명동의안을 둘러싸고 파열음을 낸 이래 여야는 숨찬 힘겨루기를 벌여왔다. 여당측은 야대구조를 깨기위해 줄기찬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원내 수적 열세를 만회할 때까지 의장단 및 원구성을 미루는 전략을 펴 왔다. 그사이 야당측도 실제 운영여부와는 무관한 줄 알면서도 단독국회 소집을 계속 강행하는 정치공세로 맞서 왔다. 여당측은 한나라당이 기아비리와 관련, 소속 이신행의원을 보호하기 위해 국회회기를 지속시킨다고 비난했으나 24일에는 급기야 국회를 기피한다는 야당의 가두공세를 감수해야 했다. 이제 여당은 여대구조 확보를 위한 정계개편 시도를 잠시 접어 두는 대신 한나라당의 원내 과반수 붕괴에 집중하고 있고, 실제 이런 사태가 임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야는 25일 국회정상화를 위해 총무회담을 가졌지만 국회부재상태는 장기화할 전망이다. 회담에서 여야는 국회의장의 당적이탈에는 동의하면서도 어느쪽이 의장직을 차지할 것인가를 두고 여전히 대립했으며, 여당측의 의원영입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신경전을 반복하는데 그쳤다.
여기서 여야는 국민들의 상식이 어떠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차피 당적을 이탈할 의장직을 누가 가져야 하는가를 놓고 평행선을 달린다면 이를 이해해줄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또한 여대 의석구조를 위해 필요한 14석을 앞으로 단기간에 영입하기 어렵다면 구태여 여당이 야당의 신경을 계속 자극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 시점에서 우리는 여야간 힘겨루기의 승자가 누가 되는가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국정의 정상화가 시급할 따름이고,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여야의 타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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