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인 것은 도덕적일 수 없고 도덕적인 것은 경제적일 수 없다. 경제와 도덕은 배치되고 서로 조화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지나치게 엄격한 도덕성은 창의와 활력을 억누르고 경제를 위축시키게 된다고 말한다.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다』는 속담 처럼 돈 버는 일은 어느정도 도덕성의 훼손이 불가피한 것이라고 한다. 경제를 하다보면 술수와 권모, 속임수와 배신, 매수 협박과 압력 청탁같은 부도덕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것이 우리의 오래된 통념이다. 너무 정직하기만 한 것은 고지식한 것이며 그런 사람은 경제인으로서는 적합치 못하다고들 한다. 도덕적인 사람은 돈을 벌 수 없고 돈 버는 사람들은 도덕적일 수 없는게 우리 사회라는 얘기다. 경제와 도덕. 상치되는 이 두개의 주제를 놓고 많은 학자들이 고심을 해왔다. 경제와 도덕을 주제로 하고 있는 존 로빈슨의 『경제철학』은 까마귀 얘기로 교훈적인 서두를 꺼내고 있다. 까마귀 사회의 경제와 도덕. 로빈슨에 따르면 신기하게도 까마귀들 사이에는 그 사회를 지배하는 강철 같은 도덕률(道德律)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사회와는 달리 그 도덕률이 그들의 경제와 기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까마귀들은 집(둥지)을 만들기 위해 그 생애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해야 한다. 하나의 둥지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수백개의 나뭇가지들. 너무 굵지도 가늘지도 않아야 하고, 너무 짧지도 길지도 않아야 하며 너무 딱딱해서 굽어지지 않거나 너무 부드러워 휘청거리지 않아야 하는 그런 특수한 나뭇가지는 아무데서나 쉽게 얻을 수 없다. 그런 특별한 나뭇가지를 일일이 찾아내 한번에 하나씩 입에 물어 나르기를 수백 수천번. 까마귀로서는 가혹하리만큼 힘든 노동이고 일생일대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까마귀들이 이 힘든 일을 피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있다. 다른 둥지의 나뭇가지를 물어오면 되는 것이다. 다른 둥지에서 빼오면 나뭇가지를 찾아 헤매면서 멀리 왕복하고 날라오는 수고를 덜 수 있다. 까마귀들로서는 강력한 유혹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까마귀 사회에서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다른 둥지의 가지는 물어오지 않는다는 철칙강철같은 도덕률이 지켜지고 있다는 것이다.
까마귀들은 이 강철같은 도덕률로 그들 경제사회의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다. 이 원칙이 흔들린다면 까마귀들은 서로 싸우며 남의 둥지를 헐 것이고 그들 사회의 생산(둥지수)은 감소할 것이다. 일보다는 싸움에 더 많은 시간을 빼앗겨 결국은 까마귀 사회 전체에 심각한 주택난이 야기될 것이고 그들의 경제는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이다.
도덕이 경제를 일으키는 사회, 그런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까마귀는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다』는 신념을 갖고 있는 우리보다 더 높은 도덕적 의식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선진국치고 부패한 나라는 없다. 부패한 나라가 선진국이 된 전례도 없다. 경제와 도덕이 일치하는 나라, 도덕률(道德律)과 황금률(黃金律)이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나라, 그런 나라가 바로 선진국이다.
IMF사태는 도덕의 황폐가 불러온 재난이다. 개발연대 30년 동안 누적돼온 불의와 부정 비리, 불합리와 낭비 갈등이 경제의 제도와 틀을 부식시키고 관행과 의식을 왜곡시켜 시장기능의 작동이 마비된 것이다. 지금 우리 경제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과제는 경제에 도덕적 질서를 세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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