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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재벌개혁/鄭璟喜 언론인(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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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재벌개혁/鄭璟喜 언론인(한국논단)

입력
1998.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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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비판적인 지식인사회에서 가장 흔하게 쓰인 말의 하나로 「부익부 빈익빈」을 꼽을 수 있다. 우리의 전통은 그만큼 부도덕한 부(富)에 대해, 그리고 부의 평등에 대해 민감하다. 또 사람을 평가하면서 『산업(産業)을 일삼는다』거나, 『산업을 일삼지 않았다』고 했다.고려때 숙종임금 9년(1104) 세상을 뜬 김선석(金先錫)은 『청렴·강직해서 산업을 일삼지 않았다』고 했다(고려사). 그는 중서시랑 평장사라는 벼슬을 지낸 사람이었다. 조선시대 정인지(鄭麟趾)는 어린 임금 단종을 몰아낸 수양대군 쿠데타에 가담해서 평생 영화를 누렸다. 그러나 그는 장리(長利)놀이로 재산을 불리고, 이웃집을 빼앗는등 『이(利)를 탐한다』는 비난이 문제됐다. 성종임금 9년(1478) 그가 삼로(三老)물망에 올랐을 때 『날마다 산업을 일삼는다』는 비난을 받아 탈락했다.

우리는 지금 「산업」이라면 만사가 정당화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과거 1,000년동안 「산업」이 금단의 영역이었다는 사실에 「뜻밖」이라고 놀라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다만 「공인(公人)」은 사리·사욕을 떠나야 한다는 평범한 규범일 뿐이다.

우리는 세계의 벼룩시장 「싸구려 할인판매대」위에 나앉은 치욕을 당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참담한 몰락의 원인을 만든 사람들은 가지각색이다.

그 중에서도 재벌로 불리는 대기업집단이 가장 큰 비판의 도마위에 올라 있다. 재벌은 과거 박정희 정권의 돌연사로부터 전두환 정권 붕괴와 노태우 정권 퇴장에 이르기까지 위기들을 넘기고 성역을 지켜왔다.

김영삼 정권도 재벌정책을 변죽만 울린채 포기함으로써 오늘의 파탄에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이제 국제통화기금(IMF)의 이름으로 재벌개혁이 요구되고 있다.

그래서 지난 18일 발표된 「55개 부실·퇴출기업」속에는 5대재벌의 문어발 20개가 포함됐다. 세상에서는 「드디어」 재벌의 성역이 무너진 것처럼 법석이다.

그러나 재벌개혁의 최종적인 목표는 자본주의 원칙에 걸맞는 소유구조와 경영구조의 확립이다. 이번에 끊어버리기로 작정한 문어발은 재벌에 도움이 되지않는 짐을 덜어주는데 그치는 것이다. 미국의 대기업은 지배주주 평균지분이 3%, 일본은 5%이다. 거기까지는 가지못한다해도, 대기업에 황제처럼 군림하는 소위 「오너」가 밀실경영을 하는 「한국적인 현상」은 끝내야 한다.

또 실업자가 거리에 넘치는 판에 사회적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고통분담」이 필수적이다. 실업문제를 돈으로 풀 수 있다고 믿는다면 지나치게 순진하다. 그보다는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자세가 보다 현실적이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초에 재벌 오너들이 청와대에서 『사재(私財)를 내놓겠다』고 약속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기업의 대량해고 회피노력도 중요하지만, 재벌 오너들의 개인적인 고통분담은 더욱 중요하다.

우리 사회에서는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망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뿌리깊다. 그 믿음이 이제는 반대가 돼야 한다. 「기업주는 망해도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바뀌어야 한다.

더구나 재벌이 사리·사욕을 즐기기에는 그 덩치가 지나치게 커버렸다. 재벌기업과 그 오너들은 원하건 원치않건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 「공인」다워야 한다. 20개의 문어발 가지치기로 생색을 낼 일이 못된다. 최종적인 개혁의 목표를 국민 모두가 확실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 길은 멀고 또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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