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시아사람들은 아시아의 아래편에 「Terra Australis Incognita」(남쪽의 미지의 땅)가 있다고 믿었다. 유럽인들은 1521년 마젤란의 세계일주항해 후 그 모습을 희미하게 드러냈고, 쿠크선장의 항해(1768∼71년)로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대륙을 오스트랄리아로 이름지었다. 바로 지금의 오스트레일리아다. 당시 이 곳에는 30여만명의 아보리제니 원주민들이 수렵생활을 하면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던진 후 제자리로 돌아오는 사냥도구인 부메랑을 만들어낸 점에서 살필 수 있듯이 아보리제니는 수많은 신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안락한 삶이 깨진 것은 영국이 이 곳을 죄수유배지로 정한 때부터다. 1788년 1월 717명의 살인범등을 실은 11척의 배가 동해안에 도착하면서 지옥으로 변했다. 그 후 1867년 유형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이 곳에 유배된 죄수는 16만명에 달했다.
■백인 죄수들은 도착직후부터 원주민들을 상대로 무차별 인간사냥을 시작했다. 특히 남쪽 타스마니아섬의 타스마니아인은 1876년 「트르가니니」란 여성이 죽음으로써 완전 멸종됐다. 백인들은 그의 뼈를 다른 동물의 뼈와 함께 박물관에 전시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으로도 부족해 1세기 이상에 걸쳐 아보리제니를 백인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10만명이 넘는 아보리제니의 자녀들을 부모와 강제로 분리시켜 백인문화 동화교육을 시켰다.
■지난 5월26일은 이같은 만행을 사죄하는 「소리 데이」였다. 이날 백인들은 이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고 다짐했지만 인종차별정책인 백호주의 망령은 아직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최근 퀸즐랜드주 의회선거에서 인종차별정책을 내건 「원 네이션」당이 약진했다. 이때문에 아시아각국은 백호주의 부활을 우려하고 있는데, 호주국민들은 백호주의를 고집하다가는 훗날 그 아픔이 부메랑처럼 스스로에게 되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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