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제 출장” 연막 실무진 공항서 ‘납치’/재무부 세제실과장 등 ‘증발’ 시키려 거짓 장기출장 명령/“통일연구” 둘러대고 빌린 아파트에 감금 ‘은폐수칙’ 하달/타이핑요원 차출까지 대통령이 기관장에 직접 전화93년 7월30일 오전 7시. 출근준비를 하던 이경식(李經植) 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은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이었다.
『요즘 실명제 때문에 수고가 많지요. 준비는 잘 되갑니까』 『예.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좀 빨리 했으면 싶은데, 작업을 최대한 서두르도록 해요』
일주일후인 8월5일. 청남대에서 여름휴가를 마치고 청와대로 돌아온 김대통령은 이부총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보고는 언제쯤 할 수 있지요』 『다음주 월요일(9일)에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좋아요. 그때까지 완벽한 내용을 만들어 보고하세요』
김대통령은 이부총리에게 종종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묻곤 했다. 그때마다 「서두르라」란 말을 잊지 않았다. 시간을 끌면 새나갈 수 있고, 그러면 실명제는 물거품이 되는 것이었다. 「철통보안」은 금융실명제의 알파이자 오메가였다. 작업은 한편의 첩보영화처럼 진행됐다.
6월29일. 김대통령의 실명제 결심을 받은 이부총리는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자문관인 양수길(楊秀吉) 박사를 불러 한국개발연구원(KDI) 박사들을 비밀리에 선발, 작업에 착수하라고 지시했다. 준비팀은 양자문관과 이부총리의 「실명제교사」였던 김준일(金俊逸) 박사, 남상우(南相祐) 박사로 짜여졌다. 이부총리는 『당시 기획원 재무부 한국은행 실무자들을 배제한 것은 이들 대부분이 실명제에 대해 보수적인데다 보안유지도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초기작업은 급한대로 서울 강남구 논현동 이부총리의 자택(빌라)에서 저녁시간에 이뤄졌다. 때론 비어있던 옆집으로 장소를 옮기기도 했는데 이부총리는 『집사람에게도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라고 말했다. 며칠후 양자문관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휘문고등학교앞 금자탑빌딩 3층에 「비밀아지트」를 마련했다. 「국제투자연구원」이라는 현판이 붙은 이곳에서 경제역사를 다시 쓰는 엄청난 거사가 준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초안작업 진행과정은 수시로 김대통령에게 보고됐다. 그런데 이부총리가 청와대에 다녀올 때마다 실명제는 강성(强性)화했다. 김박사의 회고. 『무기명 장기채가 논란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실명제 취지에는 어긋나지만 지하자금을 끌어들이려면 무기명 장기채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지요. 결국 복수안을 만들어 올렸는데 대통령은 「예외란 없다」며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쟁점이 생기면 대통령은 늘 강한 쪽을 선택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7월8일 이부총리는 열흘만에 완성된 실명제초안을 김대통령에게 설명했다.
『수고했어요. 빨리 실명제 법률작업에 착수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비밀을 유지하더라도 최소한 재무부장관과 비서실장은 알고 있어야 일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에게는 내가 직접 얘기하지요』
실명제에 관한 한 홍재형(洪在馨) 재무부장관은 처음부터 신중론자였다. 실명제를 하더라도 정상적 입법절차를 거쳐야한다는 생각이었다. 더구나 시행시기에 관한 재무부의 내부결론은 93년말로 되어있었다.
실명제 찬반논란이 한창이던 5월초. 김대통령을 독대한 홍장관은 실명제를 「뒤주론」에 비유해 설명했다. 『돈은 어두운 데을 좋아하고 경제도 법이 미치지 않는 곳이 있기 마련입니다. 뒤주에서 바가지로 쌀을 다 퍼내려해도 구석에 조금 남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봅니다. 실명제는 꼭 실시해야 하지만 돈의 특성이나 경제흐름을 생각하면서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결심이 선 이상 홍장관의 생각은 변수가 될 수 없었다.
속도는 빨라지기 시작했다. 총지휘자는 이부총리였지만 KDI 학자들이 만든 초안은 어디까지나 골격일 뿐 세부법률작업은 어차피 주무부처인 재무부의 몫이었다. 작업에 합류한 홍장관은 바로 김용진(金容鎭) 세제실장을 팀장으로 82년 실명제법안 작업을 담당했던 김진표(金振杓)세제심의관, 금융전문가인 진동수(陳棟洙) 해외투자과장으로 준비팀을 구성했다.
절대비밀을 유지하면서도 단기간내 일을 끝내려면 밤샘작업이 가능한 비밀공간과 법안실무작업을 맡을 소수정예인원을 확보하는 일이 급했다. 홍장관의 회고. 『비밀합숙장소로는 강북이 좋았지만 내가 오가기 불편해 결국 과천 주공아파트 한채(505동 304호)를 450만원에 두달간 빌렸습니다. 집주인에겐 대학교수들이 정부의 남북통일 용역연구를 수행한다고 둘러댔지요. 이때부터 실무진들은 실명제 작업을 남북통일작전으로 불렀습니다』
합숙요원으론 임지순(任智淳) 소득세제과장, 임동빈(林東彬)·최규연(崔圭淵) 사무관이 낙점됐다. 합숙작업의 모든 뒷바라지는 백운찬(白雲讚) 사무관에게 맡겨졌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을 「증발」시키는 것이었다.
홍장관의 계속된 설명. 『정기국회에 상정될 세법개정작업으로 한창 바쁜 시점에 세제실 멤버를 빼면 뭔가 엄청난 일이 있음을 공개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지요. 결국 외국의 실명제 사례연구를 위해 장기출장명령을 내린 뒤 이들을 비밀장소에 합숙시키기로 했습니다』
당시 합숙팀멤버였던 W씨의 회고. 『7월 하순께였습니다. 갑자기 40일간 해외출장명령이 떨어졌는데 좀 이상했어요. 장기출장인데도 당장 출발해야한다거나 짐은 최대한 줄이라거나 하는 말이 없었습니다. 출장지역도 외국의 수도나 금융중심지가 아닌 생소한 도시였어요. 후에 들은 얘기지만 대도시를 출장지로 하면 현지 주재관들에게 미리 연락할까봐 일부러 낯선 도시로 정했다더군요』
이들은 공항에서 여행가방을 든 채 「납치」됐다. 당초 완벽한 위장을 위해 일단 하와이로 출국했다가 몰래 입국시킬 예정이었으나 일정이 촉박해 바로 합숙소로 향했다. 경제의 틀을 다시 짜는 역사적 과제가 부여됐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들은 이미 「감금」된 후였다. 합숙팀에겐 ▲현관문을 나설 수 없다 ▲창문가에도 서면 안된다 ▲전화를 삼가하되 집에 꼭 통화할 경우 국제전화로 위장하라는 등의 「은폐생활수칙」이 하달됐다. 동시에 「절대비밀을 지킨다」는 서약서를 써야했다.
실무작업에 참여했던 A씨의 얘기. 『보안유지를 위해 인원동원에 관한 모든 결정은 대통령이 직접 내렸습니다. 방대한 자료를 타이핑할 인력이 필요해 워드프로세서 경진대회에서 수상한 국세청 직원을 차출하겠다고 보고했더니 대통령께서 추경석(秋敬錫) 국세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그 직원을 부총리에게 보내라고 지시했다더군요. 고위직 이동도 아닌 직원 한사람 파견에 대통령이 직접 얘기한 것에 추청장은 매우 어리둥절했다고 합니다』
자료인쇄도 큰 문제였다. 원래 실무팀은 보안을 위해 인쇄도 아파트안에서 해결키 위해 1,000만원짜리 최고급 복사기까지 구입했지만 소음 때문에 불가능했다. 결국 11일 밤 과천시내 범신사란 인쇄소에서 인쇄공 7명으로부터 「비밀서약서」를 받은뒤 지하작업장 전화코드를 모두 뽑고 출입문 두개중 하나는 폐쇄, 다른 한쪽은 백사무관이 보초를 선 채로 밤샘작업을 했다.
작업은 보름동안 계속됐다. 이들은 삼복더위를 견디며 밀폐된 아파트 공간안에서 하루 20시간씩 강행군을 했다. 합숙팀 W씨의 회고. 『실명제는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은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김대통령과 비서실장, 이부총리, 홍장관, 재무부팀(7명), KDI팀(3명), 법안심의를 맡은 방기호 법제처심사국장, 국세청 직원 2명, 금융기관 교육업무를 지원한 국민은행 과장 1명. 적어도 실명제 하루전까지 그 탄생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20명도 안됐다. 실명제 비밀작전은 그만큼 완벽했다.<이성철 기자>이성철>
◎실명제 주역들 근황/이경식씨 집에서 독서소일/실무진 대부분 공직에 남아/비밀작업멤버 정기적 만남
금융실명제 비밀실무작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지금도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부총리부터 하위직원까지 직급분포가 너무 다양해 전원참석은 어렵지만 3월에도 몇사람이 점심을 같이했다.
실명제 전과정을 총괄했던 이경식부총리는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이후 부총리직을 물러난 뒤 3월까지 한국은행총재로 재임했다. 환란(換亂)의 도의적 책임을 지고 한은총재에서 물러난뒤 현재는 외부활동을 삼가한채 독서등으로 소일하고 있다.
홍재형 재무부장관은 경제기획원장관, 초대 재정경제원장관 등 승승장구했지만 96년 총선 당시 여당공천으로 청주에서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신 뒤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로 있다가 지난달말 사퇴했다.
초안작업을 맡았던 양수길 박사는 교통개발연구원장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을 거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로 나가있다. 김준일 박사는 재경부장관 자문관, 남상우 박사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산하 국제대학원장으로 재직중이다.
재무부 실무팀장이었던 김용진 세제실장은 국무총리행정조정실장 과학기술부장관을 역임했으며 현재 조세연구원 자문위원 직함을 갖고있다. 김진표 국장은 재경부 재산소비세심의관으로, 진동수 과장은 정보통신부 체신금융국장, 임지순 과장은 국세청 국제조세국장으로 있다. 서기관으로 승진한 최규연·백운찬 사무관은 각각 영국유학 및 외부파견근무중이며, 임동빈 사무관은 지난해 공무원을 그만두고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자리를 옮겼다.
1등 공신은 누가뭐라해도 김영삼 대통령이지만 지금은 금융실명제처럼 허무한 운명이 되어버렸다.
□긴급명령 초안과 최종안 주요내용비교
◆실명전환의무기간
·KDI팀이 만든 초안:2주
·재무부팀이 만든 최종안:2개월
◆의무기간이후 전환시
·KDI팀이 만든 초안:1년 지난때마다 원금의 10% 과징금 부과, 2년 경과에도 실명전환 안하면 전액국고몰 수
·재무부팀이 만든 최종안:1년 경과시 원금 10%씩 6년간 과징금부과, 이자소득 90% 중과세
◆금융기관직원의 실명확인위반시
·KDI팀이 만든 초안:300만원이하 과태료
·재무부팀이 만든 최종안:500만원이하 과태료
◆자금출처조사
·KDI팀이 만든 초안
(1안)일체면제
(2안)개인금융자산이 일정액 초과시 조사
-미성년자:3,000만원
-20대세대주:1억원
-30대세대주:3억원
-40대세대주:5억원
-비세대주는 절반금액
·재무부팀이 만든 최종안:연령별로 5,000만원까지 면제
◆예금인출
·KDI팀이 만든 초안:일정액이상 국세청통보 및 거액인출규제
·재무부팀이 만든 최종안:3,000만원이상 인출시 국세청 통보
◆비밀보장위반
·KDI팀이 만든 초안:700만원이하 과징금 또는 3년이하징역
·재무부팀이 만든 최종안:2,000만원이하 과징금 또는 3년이하 징역
◆사후조치
·KDI팀이 만든 초안:주식시장 3일간 폐장
·재무부팀이 만든 최종안:다음날 오전장만 폐장
◆경과규정
·KDI팀이 만든 초안:내부거래 위장지분이 나타날 경우 의결권 제한
·재무부팀이 만든 최종안:1년내 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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