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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사정없는 사람들/김동길 前 연세대 교수(東窓을 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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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사정없는 사람들/김동길 前 연세대 교수(東窓을 열고)

입력
1998.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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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16강 진출의 꿈이 좌절되었다고 한다. 잠오는 눈을 비비며 이른 새벽 네덜란드와의 축구시합을 지켜본 많은 한국인들이 크게 실망한 사실은 부인할 수없다. 애석하게 패한 것을 석패라 하고 참혹하게 패한 것을 참패라고 한다. 1 대0, 2대0도 아니고 5대0이었으니 참패 중에도 참패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우리 편의 골문을 지키고 섰던 그 믿음직한 사나이만 아니었어도 아마 족히 열다섯 골은 먹었을 것이다.나라의 살림도 어렵고 전반적으로 사회가 침체되어 있는 이 때인지라 축구에서라도 한 번 이겨주었으면 하는 국민의 바람은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가 일제하에 그 수모를 받으며 답답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을 때 비록 일장기를 달고 뛰기는 했지만 한국의 젊은이 손기정 선수가 올림픽마라톤에 1등하여 월계관을 썼을 때의 감격은 오늘도 우리 가슴 속에 새롭다.

그러나 한국의 축구가 16강에 끼어들만큼 대단한 실력을 지닌 것처럼 우리가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처음부터 16강에 진출하기는 어려울 것 같으니 너무 무리하지 말고 최선만 다하라고 당부하였더라면 그런 참패는 면할 수도 있었으리라 믿는다. 엄청난 국민적 기대를 의식하면 자연 몸이 무거워지고 차는 공이 엉뚱한 곳으로 굴러가게 마련이다. 압박감은 인간으로 하여금 실력발휘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법이다.

이번 축구 시합에서의 참패보다 더 참혹한 것은 차범근 감독의 전격 해임이다. 네덜란드와의 대전에서 5대0으로 패배한 사실을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할 사람은 대통령도 아니고 문화관광부 장관도 아니고 국민도 아니고 차감독 자신이라고 믿는다.

그를 당장 해임시킨다고 요다음 경기에서 승리한다는 보장은 없다. 참패도 서러운데 해임까지 당하면 그는 이제 축구계를 떠나야 한다는 것인가.

인물 하나를 키워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그의 인격과 장래를 이렇게 밟아도 되는 것인가.

축구협회는 언제부터 국민여론을 그토록 두려워하여, 인정 사정 없이 차감독을 도중 하차시키는 것인가. 너무 성급한 처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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