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무 견제시스템 도입하고 대통령이 직접 조사팀구성 비리소지 원천봉쇄해야”군이 막연하게나마 병역비리 연루자들의 윤곽을 밝혔다. 병역비리에 연루된 현역들의 숫자가 130여명이며, 군사령관 기무사령관 논산훈련소장 조달본부외자부장 등의 장군들이 거명됐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 비리를 저지른 현역들은 극히 소수라는 것이 발표의 요지다. 국민의 정서와 대통령의 엄명을 거역할 수 없어 일단 제스처는 쓰지만 내실은 쓸어묻기다.
국방장관은 현역들의 보호자다. 아무리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장관이 됐지만 장관의 입장은 대통령과 다르다. 현역들의 잘못을 감춰주지 못하면 부하가 따라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병역비리를 「철저히」 밝히라는 명령을 국방장관에게 내리는 것은 처음부터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이었다.
71년 박정희 대통령은 어느 한 고위직이 저지른 병역비리를 보고 받고, 대규모 비리가 있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이에 대한 조사를 국방장관에게 맡기면 사건을 축소할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던 그는 수소문 끝에 대령 한사람을 찾아냈다. 그 대령은 너무나 강직하기 때문에 군수뇌부가 가장 싫어하는 기피인물이었다. 박대통령은 바로 그 대령에게 병역비리 조사권을 부여하는 한편 다른 한쪽으로는 보안사와 검찰도 동원했다. 그 결과 공직자와 지방 토호들의 병역비리가 낱낱이 고발됐다. 박대통령은 고위공직자 및 재산가들의 자식들을 특별관리 리스트에 포함시켜 무조건 최전방으로 배치했고, 보직이동을 금지시켰다. 그러나 그 후의 역대 대통령들은 병역비리에 관심을 갖지 않았고, 그로 인해 병역행정은 지난 20년간 기율없이 곪을 대로 곪아왔다.
첫째, 원준위 및 박원사가 과거 십수년간 보직을 바꾸지 않고 돈버는 자리에서 근무한 것은 그의 직속상관들은 물론 주위의 비호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고, 이는 금품수수가 광범위하게 확산돼 왔을 것이라는 의혹을 낳게 한다. 특히 군수사기관에 소속된 박원사가 체포될 경우 헌병감실의 총체적인 비리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둘째, 일개 준위가 수많은 고위장성들과 폭넓은 거래를 해왔다는 사실은 군이라는 집단이 준위급과 장군급이 동등한 자격으로 거래하는 비계급 집단으로 타락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셋째, 한 사람의 준위가 병무청간부, 훈련소간부, 인사참모부장군들, 군의관 들을 사통팔달식으로 통하고 때로는 돈으로 매수해가면서 동네반장 노릇을 해온 사실은 병무행정은 물론 군 전체에 기율과 시스템과 명예의식이 없다는 사실을 나타내주고 있다.
병역비리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면 세 가지 조치가 필요하다. 첫째, 제2·제3의 「원준위」및 「원준위 리스트」를 찾아내기 위해서는 옛날 박대통령이 취했던 식의 대대적인 조사팀을 대통령이 직접 구성해야 한다. 둘째, 어느 한 두사람의 야합을 통해서는 비리가 저질러 질 수 없는 정교한 견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까지 병역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대통령은 「발본색원재발방지」의 엄명을 내리지만 실상은 대통령은 장관에게, 장관은 병무청장에게, 병무청장은 실무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식으로 문제를 덮어왔다. 견제시스템 역시 국방장관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외부 시스템 전문가들이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셋째, 아무리 견제시스템이 훌륭하다 해도 그것을 감시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이를 위해서는 매년 한차례씩 대통령이 직접 암행어사를 구성해야 한다.
현정권의 기득권 세력이 연루돼있을지 모를 이 사건을 과연 국민의 입장에 서서 시원하게 해결해낼지, 아니면 원준위 수첩에만 국한시켜 유야무야 시킬지 두고볼 일이다. 이는 앞으로 군비리는 물론 국가 전체에 대한 대통령의 개혁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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