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문우·후배 등 참석/술과 詩에 취해 살았던 호방한 한평생 기려7월2일은 「논개」의 시인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1898∼1961)가 태어난지 100주년이 되는 날. 「주성(酒聖)」혹은 「기인(奇人)」으로 불렸던 수주는 그 별호처럼 술과 문학으로 호방한 한 평생을 산 민족시인이었다.
수주 변영로 기념사업회(회장 李容相·이용상 시인)는 이날 낮12시 경기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 선산에 있는 고인의 묘소에서 한국일보사 후원으로 송시비 제막식을 가진다(차량편 오전 10시 한국일보사 주차장 출발). 행사에는 아들 문수(文壽·전 대한공론사 편집국장)씨등 유족과 구상 설창수시인등 고인과 절친했던 문우, 후배들이 참석한다. 이용상시인은 「수주 영전에 드리는 송시」에서 「수주가 소싯적부터 가슴깊이 아로새긴 한 가지 믿음은 자유와 존엄이 꺾인 인생이란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는 것이었다」며 이 때문에 식민지하에서 「하루에도 천년을 울고 억년을 울었던 것이다/술에 취하고 울분에 취하고/시에 취하고 사랑에 취했다」고 회고했다.
서울 출생인 수주는 중앙고보 전신인 중앙학교에 다니다 자퇴하고 만주를 유랑하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열아홉살 때 중앙고보 영어교사로 돌아와 이듬해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했다. 25세때 이화여전 교수로 발탁되면서 「논개」가 수록된 첫 시집 「조선의 마음」을 냈으나 바로 일제에 의해 판금당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대학 유학에서 돌아와 손기정 일장기 말살사건과 YMCA비밀조직에 가담했다가 옥고를 치른 그는 이후 붓을 놓고 술로 울분을 달래는 시절을 보낸다. 해방후에는 성균관대 영문과 교수를 거쳐 영문일간지 「코리안 리퍼블릭」을 발행했으며 55세때 수필집 「명정(酉名酊) 40년」을 낸다. 여기서 그는 『나는 돈키호테를 배우고 싶다…작은 지혜를 믿어 무엇하며, 작은 역량을 헤아려 무엇하며, 결과와 여하를 따져 무엇하랴』는 유명한 구절을 남겼다.
학자냄새를 못 느끼게 한 영문학자이자 우리 민족의 소박한 정서를 노래한 시인이면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해 독설과 기행으로 문학사에 많은 일화를 남긴 수주. 만년에는 대낮부터 충무로에서 시작해 명동의 대포집에서 하루를 마치는 식으로 술과 시에 젖어 살았다. 그의 무덤에는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이 합장돼 있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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