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정치 운용의 핵심은 견제와 균형에 있다. 이는 비단 입법·사법·행정의 국가권력 분립 정신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여야간의 건전한 긴장관계가 정치발전에 기여한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다. 독선적 여당과 무력한 야당사이에 토론과 타협의 성숙한 정치문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한나라당의 표류가 너무 오래 계속되고 있는 점을 걱정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새 정권출범이후 지난 4개월간 한나라당은 정권을 잃었다는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채 흔들려 왔다. 야당으로서의 이념이나 정체성은 고사하고 집권여당에 대해 무엇을 비판하고, 어떻게 반대해야 할 지 갈피를 못잡는 지리멸렬한 모습이었다.
한나라당이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구심력을 갖춘 지도력의 부재다. 집권여당인 국민회의나 자민련이 「김씨」로 상징되는 확고한 리더십 아래 놓여 있는 것과 분명하게 비교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을 민주화한 정당이라고 봐주기도 어렵고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들도 만만치 않다.
여야구도가 지역성을 기반으로 짜여져 있고, 정권교체로 인한 이념적 공동상태가 야당의 입지를 축소시키고 있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여서야동(與西野東)으로 나타난 지난 6월 지방선거 결과가 바로 이런 정치구도의 산물이다. 여권이 야당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다각적인 정계개편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것도 이같은 구도를 염두에 둔 정치력의 확대노력이라 할 수 있다.
한나라당 역시 나름의 정치력 확대가 필요하다고 한다면 이는 자생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나와야 할 것이다. 여당의 정계개편에 본능적 반발만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지역주의를 해소할 적극적인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인물정치를 비난하기 보다는 새로운 리더십을 먼저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최근 당내에서 일고 있는 당풍쇄신, 세대교체, 혹은 「토니 블레어론」등은 다분히 전당대회를 앞둔 당권경쟁의 성격을 갖는 논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당의 정체성을 찾고 자생력을 강화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대다수 국민의 심정이다. 비판, 견제, 대안세력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는 강한 야당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한나라당의 각성과 분발을 주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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