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치기식 추진땐 부작용/정부 직접개입 자제하고/稅감면 등 제도정비 바람직”금융감독위원회는 부실기업 판정 1차 결과를 발표했다. 나아가 빅딜을 거부할 경우 여신중단이라는 극약처방까지 동원해서라도 빅딜을 성사시키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힘으로써 기업구조조정 문제는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기업구조조정 방향을 세 가지로 잡고, 경영투명성제고와 지배구조개혁, 사업구조개혁, 재무구조개혁을 추진해 왔다. 기업지배구조 개혁을 위해서는 사외이사제도 도입, 소액주주권한 강화, 결합재무제표제도를 도입하는 등 많은 성과가 있었다. 기업관계법, 상법, 증권거래법, 회계관련법을 대폭 개정함으로써 경영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기틀을 마련한 점은 중요한 성과이다.
그러나 사업구조 개선과 기업 재무구조 분야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대기업들이 기업구조조정 계획을 수차례 정부에 제출하고 이를 이행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는 성과가 지지부진하다고 보고 강제적인 조정에 나섰다. 이에대래 기업들은 재무구조 개선과 계열사정리에는 시간이 걸리며, 정부가 나서서 성급하게 매각과 사업축소를 강요하는 바람에 오히려 구조조정이 지연된다고 주장한다. 살인적 금리와 금융시스템 마비 상황에서 부채비율을 낮추고 싶은 것은 정부보다 기업이 더 절실하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구조조정 성과에 조급한 나머지 설익은 정책이나 발언으로 시장을 혼란시킨다면 오히려 구조조정에 역기능으로 작용한다. 그동안 정부는 모든 기업들에게 일률적으로 축소지향형 구조조정만을 강요해왔다. 『왜 안파나, 흑자사업도 팔아라』고 정부가 요구하는 것은 국내에 매수세력이 위축된 가운데 우리 기업의 협상력만 약화시키고 가격만 떨어뜨렸다. 구조조정도 시장원리가 지배한다. 매각 뿐만 아니라 매수측 세력도 있어야, 가격이 성립되고 거래가 이루어진다. 국내에서도 여건이 양호한 기업들은 인수의사를 밝히고 매수세력으로 적극 나서야, 파는 기업도 제값을 받을 수 있다. 정부가 구조조정 성과에 불만을 내비칠때마다 국내 기업의 협상조건은 더욱 악화되며, 매각대금이 더 잘려나간다는 불만도 높다.
정부가 이번에 발표한 부실기업 판정결과도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55개 퇴출기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선정기준이 불명확하고, 끼워 맞추기식으로 퇴출기업을 선정했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다. 정부는 계속해서 2차 판정을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왜 부실판정을 지금처럼 일시에 몰아서 추진해야 하는지가 의문이다. 부실기업의 판정은 일과성이 아니라 진행형으로 추진하는 것이 사회적 충격이 덜할 것이다. 부실이 발생할 때마다 은행에서 처리하면 될 일을 일시에 몰아서 실업문제, 사회적 불안을 확대시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가 주도하는 빅딜도 부작용이 우려된다. 재벌기업간의 대규모 사업교환은 그야말로 「기업의 비즈니스」다. 사업교환의 의미대로 빅딜은 쌍방에서 교환의 편익이 있을 때 이루어져야 한다. 한쪽이나 쌍방에서 거부하는데도 정부가 밀어붙인다면 결국 과거의 산업합리화, 중화학공업투자조정과 무엇이 다른가? 과거 7080년대 합리화조치, 중화학투자조정 대책 등의 경험를 돌이켜 보면 정부가 억지로 추진하는 가운데 특혜와 재산권 시비만 남기고 시장집중만 심화시켰다. 빅딜에 직접 개입하기 보다 정부는 구조조정 시장 자체가 활성화되도록 조세감면이나 기업인수, 분할, 매각 등의 제도 정비를 통해 구조조정 환경을 조성해주면 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