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중환자 퇴원 딜레마/“집에서 편히죽을 권리도 없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중환자 퇴원 딜레마/“집에서 편히죽을 권리도 없나”

입력
1998.06.22 00:00
0 0

◎“의사를 살인자로 만들셈이요”/보라매병원 살인죄계기 잇단 실랑이… 公證사태까지진료중단시 사망 가능성이 높은 환자를 가족의 요구로 퇴원시켜 숨지게한 서울 보라매병원 신경외과 전문의에게 법원이 살인죄를 적용한 이후 의료인들이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중환자실마다 『퇴원시키면 죄인이 된다』며 퇴원을 만류하는 의사와 『집에서 편안하게 죽을 권리도 없느냐』는 환자보호자간의 실랑이가 끊이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일부 의사들은 퇴원을 요구하는 환자보호자들에 대해 「살인의도가 있다」고 검찰에 신고하는가 하면, 판사에게 환자의 증상을 설명하고 퇴원시켜도 좋을지 문의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서울 A종합병원 내과의사 이모(37)씨는 최근 급성폐렴, 급성신부전증 등으로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온 김모(81·여)씨를 퇴원시키려는 보호자들과 심하게 언쟁을 벌였다. 보호자들은 『환자를 객사(客死)시키려하는가. 더이상 치료비를 낼 수 없다』며 의사의 멱살을 잡고 폭언을 했다. 이씨는 보호자 6명으로부터 『의사는 적극적으로 퇴원을 만류했다』는 내용의 확인서를 받은후 환자를 퇴원시켰다.

이같은 갈등은 대형종합병원의 신경외과 소아과 등에서 하루에도 수차례 벌어지고 있다. 19일 서울 B종합병원 소아중환자실에는 34주만에 출생해 체중이 1㎏에 불과하고 폐동맥 고혈압증으로 인공호흡을 통해 생명을 이어가는 영아환자를 두고 의사와 보호자간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보호자는 『치료비로 1,500만원이나 썼으나 회복될 기미가 없다』며 퇴원시켜줄 것을 요구했고, 의사는 『지금 퇴원하면 모두 범죄자가 된다. 변호사의 공증이나 검사의 확인서를 받아오라』고 맞섰다.

서울대병원 소아과 전문의 최중환(崔仲煥)씨는 『법원의 판결이유에 따르면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는 뇌사 등 사망이 확실해질 때까지 퇴원할 수 없다』며 『자칫하면 살인자로 몰릴 상황에서 보호자의 딱한 사정을 들어줄 수 있겠는가』고 반문했다. 대한신경외과학회 등은 이와 관련, 보호자들에게 퇴원 불가 이유를 설명하는 안내문을 준비중이다.

대한전공의협회 이준구(李俊九·신촌세브란스병원) 회장은 『이번 판결은 의료현실을 개선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대안없는 판결』이라며 『치료비를 부담할 수 없는 가족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과 일부 환자보호자들은 의료계가 이번 판결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해 환자 보호자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서울지검 남부지청 이중희(李仲熙) 검사는 『이번 판결은 의사와 보호자간의 합의로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삶을 종료시켜온 의료관행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무책임한 의사에 대해 죄과를 물은, 그야말로 특수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이동준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