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아시아에서는 엔화로 무역 대금을 결제하도록 하자. 엔화 표시 자본거래를 늘리고 각국의 외환보유고에서 엔화가 차지하는 비중도 높이자』 최근 일본에서 활발해진 「엔 국제화」 논의의 내용이다.80년대 중반에도 똑같은 주장이 제기됐다. 주변국의 반응은 차가웠다. 아시아의 집단악몽인 「대동아 공영권」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10여년이 흐른 지금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다. 지난달 23일 아·태경제협력체(APEC) 재무장관 회담에서 마쓰나가 히카루(松永光) 대장성 장관이 직접 「엔 국제화」를 선언했다. 아시아 국가의 반응은 「환영」에 가까웠고 중국조차도 적극적인 반대를 표하지 않았다. 최근 도쿄(東京)에서 잇달아 열린 국제통화·아시아 경제 위기 심포지엄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이어졌다.
일본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잣대는 사라졌다. 대신 어느쪽이 자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냐가 새 잣대가 되고 있다. 아시아 지역을 휩쓴 외환위기가 배경인 것은 물론이다.
자국 통화를 달러화와 지나치게 연동한 결과, 단기 달러자금의 대량 유입과 이탈에 견디지 못한 것이 아시아 외환위기의 내용이라는 시각은 이미 보편성을 얻었다.
또 80년대 이후 아시아 경제는 엔고(円高)기에는 호황을 구가하고 엔저(円低)기에는 침체하는 틀에 박힌 모습을 보여 왔다. 최근의 엔저에 아시아 각국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것도 당연했다. 무역 결제에서 엔화의 비중이 낮아 엔/달러 환율 변동이 수출경쟁력을 크게 좌우하고 있다. 엔화 결제 비중이 높아지면 엔/달러 환율이 수출경쟁력에 미치는 영향은 그만큼 줄어 든다. 저금리 장기 엔차관도 매력적이다.
물론 일본의 이익이 크다. 「엔 국제화」가 크게 진전되면 일본은 현재 미국이 누리고 있는 것과 같은 자본거래 수익을 얻는다. 아시아와의 교역 안정으로 국내경제 영향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환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을 막아 산업 공동화를 막는 이점도 있다.
우리는 어느 쪽이 이익인가. 국내 전문가들의 진지한 논의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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