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경제학 허찌르고 루빈,17일 전격 시장개입/엔 급반등 “타이밍 완벽”「월가의 귀재(鬼才)」가 전세계의 투자가를 이겼다. 17일 전격적으로 외환시장에 뛰어들어 엔화 추락의 물길을 돌려버린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의 이야기다.
그는 26년간 월가에서 잔뼈가 굵은 투자가 출신이다. 정가에 입문하기 전 그는 월가의 대표적인 투자자문회사인 골드만 삭스사의 공동회장이었다. 그런 그의 이력을 빗대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번 그의 전격적인 시장개입을 「루비노믹스(Rubinomics)」라고 명명했다. 그의 경제운용은 정통 경제학적 접근보다는 시장에 대한 동물적 투기감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말이다. 「루비노믹스」는 여지없이 전세계 투자가들의 허를 찔렀다. 패닉 현상으로까지 치닫던 엔화 투매는 루빈의 전광석화식 개입으로 일단 주춤해졌다. 그러나 과연 「루빈의 도박」이 성공할 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월가의 아침 회의가 시작되는 17일 아침 8시. 뉴욕보다 3∼4시간 빠른 유럽시장에서 엔화가 급반등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로렌스 서머스 재무부장관의 일본행 소문 때문이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며 15분이 흐르자 미국 정부가 20억 달러를 시장에 푼다는 게 확인됐고 시장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미국 언론들은 『끝내 미국 정부가 시장개입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대부분의 투자가들은 마치 덫에 빠진 형국이 되었다』며 월가의 분위기를 전했다.
뉴욕의 경제전문통신인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루빈의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 『완벽한 외환딜러의 솜씨』라고 평했다.
루빈 장관은 11일 상원재무위에 출석, 『시장개입은 단기적 효과만 있을뿐 근본적인 처방은 못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그때부터 시장개입을 의중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내심 달러당 142엔을 위험수위로 생각하고 있던 그는 일본 정부로부터 금융개혁 등에 대한 확실한 답변을 얻어낸 뒤 개입에 나서려 했으나 시장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금주 들어서 엔화가 147엔대까지 떨어지자 그는 개입의 시점만을 노리고 있었다. 마침 17일 런던시장에서 엔화의 가격이 반등되는 등 월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루빈은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결심을 통보했다.
완벽한 타이밍이었다.<워싱턴=신재민 특파원>워싱턴=신재민>
◎루빈 재무장관은 누구/26년간 월가서 잔뼈… 골드만삭스 회장 출신
로버트 루빈(60)은 미 행정부내에서 「속삭이는 목소리」로 알려져 있다. 그는 목소리는 작으나 냉철하고, 분석적이며 실용적인 인물로 정평이 나있다.
26년간의 월가 주식거래인 경력에서 형성된 성격이다. 그의 과감한 시장개입 결정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도 이같은 신중한 성격 때문이었다. 1938년 뉴욕 맨해튼에서 태어난 그는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최우등(수마 쿰 라우데)으로 졸업했다.
변호사였던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하버드대 로스쿨에 입학했지만 입학한 지 3일만에 그만두고 런던 스쿨 오브 이코노믹스(LSE)에서 수학한 뒤 예일대 로스쿨에서 변호사 자격을 얻었다.
그러나 변호사일이 「따분해」 2년만에 그만두고 66년 골드만 삭스에 입사, 90년 공동회장직까지 올랐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선거캠프에서 선거자금 모금책임자로 활동했고 클린턴 취임후 대통령 경제담당보좌관으로 국가경제위원회(NEC)를 이끌다 94년 재무장관이 됐다.<박정태 기자>박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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