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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월드컵 관전법/임철순 부국장겸 문화과학부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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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월드컵 관전법/임철순 부국장겸 문화과학부장(메아리)

입력
1998.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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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개막행사를 통해 프랑스는 세계를 감탄케 했다. 경기장이라는 정원에서 축구의 꽃이 피어나는 과정을 연출한 식전행사 「축구의 꿈」은 월드컵이 단순한 스포츠행사만이 아님을 알게 해주었다. 프랑스인들은 축구도 문화의 눈으로 보고 있다. 르 몽드는 「축구는 민중의 아편인가, 완벽한 감각의 유희인가」라는 제목으로 문화면에 2개면 특집을 실어 축구에 관한 세계의 주요 저작을 분석했고, 리베라시옹은 32개 출전국 작가들의 축구단편소설을 모아 40쪽짜리 별쇄특집을 냈다.그러나 프랑스가 더 돋보이는 것은 한 가지 일에 모두가 휩쓸리지 않는 점이다. 이미 보도됐듯 프랑스국민의 약 3분의 1은 월드컵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으며 월드컵 보이콧위원회라는 단체는 축구가 민중의 의식을 잠재우는 초강력 살충제라며 반대운동을 벌였다. 축구 강팀을 보유한 스트라스부르시는 시민부담만 커진다며 월드컵 유치를 거부했다. 그들은 일사불란과 획일성을 타기하며 다양함과 창의성을 존중한다.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애쓴다. TV에 책광고를 허용하는 문제로 논쟁을 벌이는 나라, 300년된 극단 코미디 프랑세즈가 인터넷에 홈 페이지를 개설한 것이 뉴스가 되는 나라가 프랑스이다.

이른바 글로벌스탠더드시대를 프랑스는 경계하고 있다. 이 팍스 아메리카나시대에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에 대드는 나라는 프랑스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금융·자본지배가 문화지배로까지 번지는 것을 프랑스는 참을 수 없어 하고 있다. 4월에 내한했던 에르베 부르주 프랑스 방송위원장은 전체 TV방영물의 60%가 프랑스나 유럽의 제작물이어야 한다는 방송정책을 소개하면서 세계가 단일한 언어, 문화, 사고에 지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갔다.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49개국의 지도자들이 지난 해 11월 베트남 하노이에 모여 결속을 다진 것도 미국과 영어권지배에 맞서는 일이었다. 또 지난 해 10월에는 「프랑스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이 부정확하고 모호한 과학용어로 지적 사기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한 미국의 물리학자 앨런 소칼의 저서에 대해 프랑스철학자들이 반발하고 나서 미­불 철학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프랑스월드컵을 둘러싼 미국 뉴스위크와 르 몽드의 최근 설전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유행처럼 프랑스제 담론을 받아들여 데리다와 라캉을 이야기하고 부르디외와 알튀세르를 논하지만 다양성 속의 개성을 추구하는 정신이나 교육관을 받아들여 정착시키지는 못했다. 더욱이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과 문화의 질을 판별하는 조회능력, 사정(査定)능력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이승희든 박찬호든 장한나든 미국에서 인정해 주어야만 안심하고 박수를 칠 수 있다. 88올림픽을 생각하면 우리도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실상 우리는 향기없는 가화(假花)로 장식된 가설무대에서 한 바탕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춤을 추었고 앞부분만 번지르르한 가건물을 지었을 뿐이다. 올림픽은 국민 전체의 성숙과 문화적 발전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기대를 한 것이 지나친 욕심이었겠지만 한국축구의 16강 진출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졌다. 이제 「16강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축구경기를 관전하면서 프랑스와 프랑스문화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외규장각 고문서를 돌려주지 않으려고 온갖 꾀를 내는 모습은 괘씸하기 짝이 없지만 프랑스가 폐회식을 통해 무엇을 보여줄지 지켜보기로 하자. 2002년에는 우리도 월드컵을 개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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