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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같고 연인같은 ‘가장 한국적 배우’/타계한 김진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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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같고 연인같은 ‘가장 한국적 배우’/타계한 김진규씨

입력
1998.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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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60년대 한국영화 대표/1,000편 가까이 출연 제작·감독으로도 명성포근하고 자상한 눈매, 깔끔하지만 서민의 텁텁함을 잃지 않는 표정. 18일 타계한 원로배우 김진규(金振奎)씨는 영화 속에서 한국적인 이미지를 응축하기 위해 노력한 대표적 연기자였다. 한동안 영화를 떠나 있었지만 그의 모습은 올드팬에게 생생하다. 친근한 웃음의 그는 여성에게는 마냥 기대고 싶은 연인으로, 남성에게는 속내를 털어놓고 싶은 다정한 친구로 기억되고 있다.

1922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나 일본 오이타(大分)현농고를 졸업한 김진규는 50년 삼촌인 김형래(金炯來)씨와 함께 극단 「장미」를 결성하면서 연기생활을 시작했다. 50∼6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했던 그는 모두 1,000편에 가까운 작품을 남겼다. 그 시발은 54년 이강천(李康天) 감독의 「피아골」. 데뷔작에서 주연을 맡은 그는 당시 글래머 스타 노경희(盧耕姬)씨와 함께 공연했다. 이 작품으로 일약 스타가 된 그는 이후 「포화 속의 십자가」(56년)「옥단춘」(〃)에 연이어 출연했고, 「벙어리 삼룡」(64)「오발탄」(61)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61)「삼포가는 길」(75)등 명작에서 주연을 맡았다. 56년 「처녀벌」에서 여배우 하연남(河燕南)씨와의 키스신은 한국영화 최초의 키스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출연편수는 많았지만 작품마다 가난하고 초라한 아버지(오발탄) 하숙행(사랑방…) 위대한 장군(성웅 이순신)등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인간미 어린 표정 속에 감정을 압축시키는 그의 선 굵은 연기는 멜로를 신파로 흐르지 않게, 역사물을 인간미가 가득하게 만들었다. 백상예술대상의 전신인 제1회 한국영화연극예술상(65년)에서 「벙어리 삼룡」으로 대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100개가 넘는 영화상과 대한민국문화예술보관훈장을 받았다.

67년부터는 제작자와 영화감독으로 변신했다. 첫 작품 「종자돈」을 제작·감독해 흥행에 성공했다. 이어 70년에는 제작비 2억원을 들여 만든 「성웅 이순신」이 참패를 하면서 곤경을 겪기도 했다. 78년에 재기, 한진영화사와 함께 제작한 「난중일기」로 그는 작품상 남우주연상등 대종상을 휩쓸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배우협회장을 다섯 차례나 역임하고 80년대 초반 영화인협회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결혼생활은 순탄치 않아 세 번의 이혼과 네 번의 결혼 끝에 2남3녀를 둔 그는 두번째 부인인 배우 김보애(金寶愛)씨와 말년을 보냈다.

83년 제주 제주시 해안동에 베버리힐즈호텔을 지었고 마지막 인생을 호텔경영인으로 지냈다. 그러나 주변사람들에게는 항상 영화를 이야기했다고 한다. 『신물나는 순간도 그리워질 정도이니 영화는 죽을 때까지 업(業)인가봐』.<권오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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