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개원 50주년을 맞아 발행된 우표는 너무 아름답다. 초록색조를 띤 밤을 배경으로 환하게 불 밝힌 황금색조의 석조물은 국민대표의 전당임을 뽐내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더하여 푸른색 돔위로 휘황찬란하게 터지면서 밤하늘을 수놓는 불꽃은 국가의사를 결정하는 최고기관에 걸맞게 환상적이기까지 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헌법학자는 이런 한 장의 우표를 놓고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우리 국회의 어제와 오늘, 미래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헌법이 정하고 있는 국회는 국민대표기관이다. 국리민복을 실현하기 위해 국민대표인 국회의원들이 이마를 맞대고 정책을 수립하는 장소다. 공개적인 토론과 설득을 통해 합의를 이뤄내고 때로 다투기도 하고 때로 타협하기도 하면서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정책을 결정한다. 그래서 헌법은 국회의원에게 국민대표로서 당파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공명정대하게 공동선을 실현할 수 있도록 자유위임(自由委任)을 보장하고 있다. 어느 누구의 압력이나 지시로부터도 독립하여 불편부당하게 국가정책을 결정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헌정 50년을 뒤돌아 보면 국회는 때로 독재와 맞서 싸우기도 하고 군사통치에 대해 국민과 함께 저항하기도 한 전당이기도 했다. 그러나 국회 50년사 전체를 놓고 볼 때 국회는 여전히 특정 정파들의 싸움장이고 입법은 공명정대한 것이 되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스스로 국민대표이기를 포기하고 각 정당의 충복으로 전락하였고, 정파 보스의 충실한 부하로 활동하고 있다. 정당은 공천이라는 무기를 통하여 국회의원의 목줄을 잡고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국회는 국민대표기관이 아니라 각 정파들의 이익을 관철하는 싸움장이 되어버렸다. 국회의원의 권위가 추락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국민들로부터도 냉소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런 과정속에서 우리 사회에서는 국회에 대한 강한 회의론이 대두하였고, 국회무용론(無用論)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것은 과거 국회의 힘을 빼놓으려는 독재자들의 바람과 맞아떨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는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번도 제대로 된 국회를 가져보지 못한 나라에서 일부 학자들은 서구의 의회회의론, 행정국가론, 정당국가론을 그대로 복창하면서 국회의 왜소화에 일조하기도 했다. 정파적 계산으로 20여일이나 원(院)도 구성하지 않은채 국정을 표류케 하는 눈 앞의 모습만 놓고 본다면 오늘 당장 국회를 없애고 싶은 감정이 치솟아도, 국회를 살리는 길을 찾아야지 국회를 무력화하거나 냉소적으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
헌정 50년을 맞아 이제는 우리도 제대로 된 국회와 국회의원을 가져봐야 한다. 그러자면 자연 국민대표자에 어울리는 자질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하고, 국회가 자기 본래의 무게를 가질 수 있게 국회제도를 획기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이런 작업에서 가장 선결적인 것이 한국의 정당구조를 전면적으로 개혁하는 일이다. 현재와 같이 국가최고기관의 하나인 국회가 이 모양 이 꼴로 된 데는 비정상적인 형태를 띤 한국정당의 비대화가 가장 큰 원인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의 활동이 국민대표 원리에 따라 이루어지고, 정당활동이 원내총무 중심으로 국회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국회의 개혁은 이렇듯 정당과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개혁과 맞물려 있다. 국회가 명실공히 입법기관과 국정통제기관이 될 수 있도록 사무처 역시 입법정책기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면적인 개편을 해야 한다. 국회의원을 장기판의 졸(卒) 정도로 보는 정치판이 지속되거나 국회를 들러리로 세워놓는 일이 계속되는 한 정치선진국은 커녕 중진국에도 다가가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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