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을 필한 남자라면 훈련병 초기 「총기수입」을 하란 말이 무슨 뜻인 줄 몰라 당황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알고보니 녹이 슬지 않도록 총을 분해해 기름칠하고 총구 속을 잘 닦는 일이었다. 이 말이 일본어라는 사실을 안 것은 한참 뒤였다. 한자로 「수입」(手入)이라 쓰고 「데이레」라 읽는 이 말의 뜻은 무엇을 고치거나 손질하고 보살핀다는 뜻이라고 일한사전에 나와있는데, 병영에서는 아직 우리말처럼 쓰인다.■「기합」이란 말은 언제부턴가 「얼차려」란 말로 바뀌어 정착됐다. 일본말 찌꺼기임을 부끄러워한 어느 지휘관의 각별한 노력이 있었던 것같다. 국방부는 건군 50주년인 올해 국군의 날까지는 「총기수입」 「도수체조」 「헌병」 등 일본어 잔재를 모두 우리말로 바꾸기 위해 군대용어 혁신을 위한 민·군 공동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짬밥」 「꼴통」같은 비속어들도 순화시키겠다니 기대가 크다.
■말만 바꾸어서는 안된다. 어느 부대에나 만연된 지연· 학연 찾기, 얼차려를 빙자한 폭력, 보급품 빼돌리기 같은 부조리와 비리가 없어지지 않고는 용어 순화는 의미가 없다. 짬밥이란 말이 왜 생겨났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군대식사가 먹을 만하고, 훈련과 근무 이외에 고달플 일이 없다면 그런 비속어가 생겨났을까. 음식이 얼마나 맛이 없으면 「사회밥」이란 대칭어가 있겠는가. 군의 사기는 잘 먹고 잘자는 데서 나온다.
■더 시급한 것은 병무 부조리 척결이다. 병무청 파견 준위가 장성들을 형님이라 부르고, 더러는 장성이 그를 그렇게 불렀다니 유착관계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겠다. 부당한 병역면제나 부대배치 또는 전역처럼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은 없다. 부조리가 터질 때마다 관계자 명단공개 약속을 되풀이하던 당국이 이번에 대통령의 질책을 받았다. 용어 바꾸기보다 무사안일에 젖은 군 지도층 의식전환이 급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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