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500마리를 이끌고, 동생과 아들들을 데리고 16일 귀향길에 오른 정주영씨는 이런 인사말을 남겼다.『어린시절 무작정 서울을 찾아 달려온 이 길, 판문점을 통해 고향에 가게되어 기쁩니다. 강원도 통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8살에 청운의 뜻을 품고 가출할 때 저는 아버님이 소를 판 돈 70원을 가지고 집을 나섰습니다. 이제 그 한마리의 소가 천마리가 되어 그 빚을 갚으러 고향산천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의 방북은 개인적으로 한마리의 소를 천마리로 늘려서 65년전의 빚을 갚으러가는 가슴벅찬 귀향이다. 장남인 그를 「일등농사꾼」으로 키우려던 아버지는 세상 떠난지 오래지만, 가출했던 아들은 세계적인 기업인이 됐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만든 농장에서 키운 소떼를 몰고 고향을 찾았다. 그 금의환향은 농경사회의 심금을 울리는 효(孝)의 결정판이다.
남북의 벽을 넘어 그의 귀향을 가능케 한 것은 돈과 상상력이었다. 국졸의 가출소년으로 세계적인 재벌 신화를 일군 정주영씨는 기발한 상상력과 끈질긴 추진력, 막대한 자본을 기울여서 역사적인 방북을 성사시켰다. 소가 상징하는 농경사회의 정서와 고도로 계산된 산업사회의 상술이 교묘하게 배합된 그의 방북은 내용과 의미, 극적인 효과에서 단연 세계의 중요뉴스가 되었다.
18세때 도망쳐 나왔던 고향을 찾아가면서 83세의 그가 준비한 선물은 옥수수 5만톤, 소 1,000마리, 소를 싣고가는 트럭 100대등 모두 137억원 어치다. 이번에는 1차분으로 소 500마리를 몰고 갔지만, 곧 2차분 소와 옥수수가 북에 전달된다. 소를 이끌고 판문점을 통해서 북으로 가겠다는 정회장의 집념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현대측은 3개월이나 끈질긴 협상을 벌였는데, 판문점이 평화와 교류의 장소로 사용되는 것을 한사코 피해온 북의 변화를 이끌어 낸 것은 결국 돈의 힘이었다.
가난한 고향사람들이 농사를 짓는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소떼를 몰고 가겠다는 꿈, 65년전의 가출과 아버지에 대한 추모, 소를 싣고가는 50대의 트럭에 선명하게 찍힌 현대(HYUNDAI)란 글자와 깃발, 정회장이 군사분계선까지 타고간 다이너스티 승용차, 83세의 고령에도 사라지기를 거부하고 냉전해소에 기여하겠다는 당당한 고집, 연도에서『차라리 소가 되어 고향에 가고싶다』고 눈물짓는 실향민…. 1998년 6월16일의 판문점은 순박한 인정과 자본주의의 상혼, 분단의 비극과 통일에의 꿈이 한데 어우러진 한편의 드라마였다.
동화가 없고, 신화가 없고, 영웅이 없는 시대에 그 드라마에는 동화가 있고, 신화가 있고, 영웅이 있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무한한 활력이 있었다. 가난이 싫어서 네번이나 가출을 거듭하던 65년전의 한 소년이 세계적인 기업인이 되어 소떼를 몰고 돌아온 모습에서 고향사람들은 무엇을 느낄까. 그것이 자본주의의 활력임을 그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깨닫고 있을 것이다.
23일 판문점을 넘어 서울로 돌아올 정주영씨는 어떤 선물보따리를 안고 올까. 차라리 소가 되어 북에 가고싶다는 실향민들에게, 남북의 화해와 교류를 고대하는 남쪽 형제들에게, 북의 개방을 기대하는 세계인들에게, 북한은 어떤 선물을 준비했을까. 정회장이 빈손으로 와서는 안된다는 것, 세계를 감동시킨 소떼 드라마가 일과성 해프닝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다. 북한은 정회장 방북을 정치적 이용으로 끝내지 말고, 그 의미를 확실하게 깨달아야 한다.
소를 보내며 우리는 빌었다. 소들아 잘 가라. 북의 논밭을 갈면서 평화의 씨앗을 키워다오. 서산농장이 그리울 때면 남북 이산가족의 그리움을 헤아려 다오. 통일의 쟁기, 화해의 쟁기를 끌어 다오. 소들아 북에서 잘 지내거라.<주필>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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