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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으로 간 소/박래부 논설위원(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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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으로 간 소/박래부 논설위원(지평선)

입력
1998.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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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식량난으로 사료인들 변변히 먹을 리 없겠지만, 원래 북쪽 소들이 더 튼실했던 모양이다. 고미술학자 고 최순우씨는 「소 닭 보듯이」라는 에세이에서 「한우가 부실해 보이는 것은 우람하고 의젓한 북녘 소의 씨가 오래 끊긴 까닭」이라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개성 출신인 그는 예전 우리 농가에서는 소가 마치 한식구처럼 가꾸어졌고 고마움의 대상이기도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어제는 새벽부터 TV들이 분주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소 500마리와 함께 북으로 가는 거대한 이벤트가 시작된 것이다. 소 실은 트럭 50여대가 통일대교를 지나 북으로 올라가는 긴 행렬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차에 오르는 정명예회장은 고향 가는 설렘으로 상기해 있었고, 트럭에 실린 소들은 영문을 모르는 채 크고 순진한 눈을 끔벅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TV로 이 역사적인 사건을 보면서 출근준비를 했고, 출근해서도 자랑스런 표정으로 소 이야기를 나눴다.

■한 민족으로서 도움을 주고받는다는 것은 그렇게 흐뭇한 일이었다. 84년 여름 우리가 수재를 입었을 때 북한 적십자사가 트럭 725대분의 쌀과 옷감 등을 보내준 적이 있었다. 당시 견본으로 신문사로까지 보내진 북한의 날쌀 한 웅큼을 몇명이 나눠 씹으면서 남다른 감회에 젖은 적이 있다. 북한에 간 소 500마리는 이제 어떤 용도로 쓰이며 무슨 역할을 하게 될까. 우람한 그 소들은 종우가 되어 북한 소들과 교접한 후 귀여운 새끼를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남조선의 기업가가 김정일 지도자를 흠모하여 보내 온 소』라고 당국의 선전에 이용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우리가 84년에 북한 쌀을 씹으며 동족의 정을 느꼈듯이, 어떤 형태로든 남북의 신뢰회복과 긴 안목에서 통일에 기여할 것이라고 믿는다. 정명예회장에게는 이제 자랑스런 「소」의 이미지가 훈장처럼 추가되었다. 「암소에서 얻는 것은 버터만이 아니다」라는 영국속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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