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오늘 판문점을 통해 북한방문길에 오른다. 89년 금강산개발 등 남북경협을 논의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 이래 두번째 북행이다. 이번에는 동생과 아들, 그리고 현대그룹 간부들이 동행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정씨의 방북에 시선이 솔리는 것은자신이 일궈낸 서산농장에서 키운 5000마리의 소떼를 이끌고 가기 때문이다. 강원도 통천 출신인 정씨는 성공한 출향사업가 자격으로 푸짐한 선물을 안고 가난한 고향사람들을 찾아간다. 소는 무상으로, 소를 싣고 간 트럭 50대는 연불 방식으로 뒷날 대금을 청산하기로하고 북한에 놓고 온다.정씨일행의 방북은 분단이후 순수민간인 신분으로서는 판문점을 경유한 첫 방북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1,000만 이산가족가운데 판문점을 통해 북한의 친척들을 찾아가는 최초의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크다. 미 CNN방송을 비롯한 세계의 매스컴들이 소떼를 몰고 고향을 찾는 이 광경을 취재, 보도하기 위해 판문점으로 몰려들고 있다.
그러나 정씨의 방북을 지켜보는 우리의 심정은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착잡하기 이를데 없다. 정씨일행의 방북이 평소 대결의 장소로는 인식돼 왔던 판문점을 통해 이뤄진다는 점에서는 자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절대다수의 실향민들이 아직도 그리운 혈육과 재회를 못하고 고형으로 죽어가고 있는 현실때문이다. 이처럼 분단 50년, 이산 반세기는 애끊는 단장의 아픔으로 다가온다.
북한은 지금이라도 오매불망 헤어진 가족들과의 상봉을 위해 눈을 감지 못하고 있는 이들 이산가족들 모두에게 재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도움을 주는 기업인에게만 선별적으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인륜과 천륜을 무시한 처사다. 너무나 타산적인 행동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우리는 판문점을 장성급 회담의 복원 등 일련의 변화를 주시하고 있다. 정씨의 방북 역시 이런 북측 변화의 산물이 아닌가 유추해 보지만 이것이 행빙의 단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대목이 아직 어느 구석에도 없다.
최근 김대중 대통령은 미국을 공식방문하면서 미국의 회의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각종 제재완화를 요청하는 파격을 보였다. 이른바 「햇볕론」은 새정부 대북정책의 기본틀이다.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을 뿐 아니라 흡수통합 의사가 전혀 없다는 남쪽의 화해 메시지에 대해 이제 북한이 진정으로 답할 차례다. 정주영씨가 이끌고 가는 소떼에 담긴 민족의 염원을 북은 더이상 외면치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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