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시인 키플링의 널리 알려진 시에 「동서(東西)의 노래」가 있다.<오 동은 동, 서는 서, 이 둘은 영원히 만날 수 없으리라 땅과 하늘이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대 앞에 이윽고 설 때까지는>오>
인도에서 태어난 키플링의 이 시는 동양과 서양의 융합이 어렵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번 6·4지방선거의 결과 우리나라는 여서야동(與西野東)으로 또 동은 동, 서는 서가 되었다. 정말 둘은 심판의 날이 오기까지는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동서현상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67년의 제6대 대통령선거 때부터이기는 하지만 노골화된 것은 김대중 현 대통령이 처음 대통령에 출마한 1971년의 제7대 선거부터다. 그 이래 선거때마다 이 망국병은 도지고 동서의 골은 더 깊어져 왔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6년 4월 15대 총선이 끝난 직후 지역교체론을 내세운 일이 있다. 당시 국민회의 총재이던 그는 당선자 총회에서 『여야간뿐 아니라 영남에서 비영남으로 지역간 교체가 이루어져야 그것이 진정한 수평적 정권교체다』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이 15대 대선에서 승리하여 마침내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실현하게 된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이 지역간 정권교체의 필요성때문일 것이다. 다수의 유권자들은 지역간 정권교체만이 지역감정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었다. 한 지역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 온 나라의 원을 푸는 것이다 싶었다. 그래서 김대중후보의 마지막 출마에 마지막 희망을 실었다. 영남의 여권표가 분산된 반사이익 덕택도 있었다고는 하지만 부산의 15.3% 등 영남권에서 두자릿수의 득표가 없었더라면 역사적 정권교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김대통령이 당선되자 그에게 투표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지역감정 해소에 큰 소망을 걸었다. 대선 직후 광주시민연대모임 등 시민단체들이 공동성명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당선은 결코 호남정권의 수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이를 계기로 호남인들은 그동안 소외와 박탈의 피해의식에서 벗어나 지역간 화해를 이루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호소했을 때 국민들은 공감했다. 또 대선직후 국민들의 여론조사에서 새정부에 가장 기대를 거는 것이 한창 고조되고 있던 IMF위기해결이고 그 다음으로 국민화합 및 지역감정 해소였던 것도 이런 간절한 원망(願望)의 표현이었다.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김대통령의 당선으로 지역감정이 해소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58.2%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의 결과는 이 기대를 무산시켰다. 지금까지의 추세로 놀랄 것 없는 결과인 것 같지만 정권교체로 희망을 걸었던 것만큼 실망은 크다. 이번 선거는 정당별로는 많은 지역에서 선거를 하기도 전에 끝나버린 선거였고 하나마나한 선거였다. 가령 광주·전북·전남지역에서 광역단체장은 말할 것도 없고 기초단체장 41개구를 통틀어 한나라당소속이 출마라도 한 곳은 광주 남구 1개구밖에 없다.
지역분할은 선거때가 되면 기승을 부리기 때문에 가장 좋은 국민화합책은 선거를 아예 안하는 것이라는 극단론도 나온다. 하나마나한 선거라면 그야말로 선거폐지론이 그저 우스갯소리라고만 할 수도 없다.
지방선거 결과의 실망은 어느 특정지역만의 배신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런 결과를 가져온 책임의 일단은 새 정부의 배신에 있다. 잔뜩 기대를 걸게 했던 새 정부가 인사의 지역편중으로 오히려 동서화합의 물꼬를 잘못 터버렸다. 정부측은 한사코 아니라고 우기지만 그동안의 불균형을 바로잡는다는 것이 많은 국민들에게 또다른 불균형으로 체감되고 있고 이것이 이번 선거에서 반감을 조장시킨 것이 사실이다.
정권교체는 단순한 권력이동이 아니다. 또 정권교체는 그 자체만으로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다른 정권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을 해내는 것이 정권교체의 의미다. 그리고 국민통합은 민주주의의 완성에 무엇보다 우선하는 기초원리다.
지금 환란(換亂)의 불끄기가 시급하다. 전 정권에 그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그 해결만을 위해서라면 꼭 정권교체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역갈등의 극복을 위해서는 지역간의 정권교체가 가장 바람직하고 그것이 실현되었다. 김대중대통령이 지역주의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적어도 원인제공자의 하나임을 부인하기 어렵다면 더욱 동서화합을 정권교체의 대의(大義)로 삼아야 할 것이다.<본사 논설고문>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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